학창시절, 프랑스 파리에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기회가 된다면 술 한병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었죠. 부탁받은 술의 이름은 압생뜨(Absinthe)! 독한 이 술은 천재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천재시인 랭보부터 인상주의 화가 고흐까지 즐겨 마셨다고 그분은 설명해 주셨어요. 오오...뭐랄까. 정말 매력적인 술일 것만 같았고, 꼭 마시고 싶어졌었답니다. 왕성한 지적 (또는 주적ㅋㅋ) 호기심에 불을 붙여 주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사실 파리 생활에 적응하느라 당분간 그런 술의 이름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올라 하숙집의 프랑스인 아저씨에게 물었죠. "술 같은 걸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압생뜨라는 술을 사고 싶은데.." 이 말을 들은 그 아저씨의 표정은 가히 가관이었습니다. 눈이 동그래진 그는 내게 반문했죠."압생뜨라고?"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내게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그 술은 판매가 금지된 술이야. 많이 마시다 보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혹시나 이 어리버리한 동양 여자애가 제대로 못 알아들었을까봐 염려가 되었는지 fou-미친다-는 말을 서너번은 반복한 것 같습니다.

뒤늦게 이 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더 끔찍했습니다. 


고흐가 진술하는 증상들과 압생트에 관한 많은 의학 정보를 감안하면 그의 발작에 압생트(absinthe)가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압생트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파리 몽마르트르 아베스가에 있는 바타이유 카페에서이었는데 당시 꼬르몽 아틀리에에서 만난 톨투르 로트렉이 그를 술마시러 데리고 다니곤 했다고 한다.

1887년 봄에 고흐가 파리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그린 자화상과 그가 압생트를 많이 마시게된 겨울에 그린, 즉 압생트를 많이 마신 다음 날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자화상을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그의 눈 주위의 부종과 눈의 충혈이 다음 날까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마신 것을 숨김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아를에 와서는 기후 탓에서인지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금주는 오래 가지 못하고 노란 집을 수리하는 동안 지누 카페에서 지내면서 ‘밤의 카페’를 그렸다. 이 그림을 본 안과 의사 마모(M.F. Marmor 1997)와 라빈(J.G. Ravin 1997)은 그림의 전등(電燈) 주위의 운륜(暈輪 haloes)과 이상한 노란 빛깔은 그가 황시증(黃視症 xanthopia)에 걸려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메일 률랭과 압생트를 마시다가 후에 고갱이 온 다음에는 그와 같이 마셨다. 특히 귀자르기 사건이 있기 전에 많이 마셨다.

아를 시립병원에 입원 당시 레이 의사가 반 고흐의 과도한 음주를 나무라자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 ........ 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

이것은 하나의 고백이다. 그는 아를에서 찬란한 노란 색을 얻기 위해 여름 내내 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를에서 그린 ‘해바라기’ 그림과 집의 빛깔에 노란색을 그것도 불타는 듯한 노란색을 많이 썼다. 그가 노란색을 얻기 위해 압생트를 마셨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소리이다. 압생트라는 술은 색맹이라는 색채의 이상을 초래하는데 황시증도 그 부작용의 하나이다. 즉 약쑥을 증류해 만든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레벤(terebene, 송진에 포함되어 있는 방향성 액체)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이 술을 많이 마셔 중독되면 시각 장애를 일으킨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의 그림에 사용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기기묘묘한 노랑-파랑 조의 색깔을 얻기 위해 고심한 나머지 압생트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아를의 노란 집’, ‘해바라기’, ‘밤의 카페’ 그리고 ‘수확하는 사람’ 등의 명화이다.

반 고흐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술 마시고 난 다음날의 자화상을 숨김없이 그렸다. 그렇지만 그는 평소에 알코올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보였다. 즉 알코올이 ‘내 광기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를 부정하고 ‘..... 그러므로 알코올 역시 이유가 될 수 없다. 물론 알코올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나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사람들이 알코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옳지 못한 인식은 마치 미신과 같은 것이다.’라고 방어 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 중에는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외출이 허용됨에 따라 감시원이 그를 따라 다녔는데 감시원은 술집에서 함께 술 한잔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외출은 주로 생 레미에서 아를로 가곤 했는데 그중 네 차례는 발작으로 이어졌다.

1889년 7월 발작이 시작되어 8월까지 지속되고. 그 해 12월과 1890년 1월에 짧은 발작이 일어났으며 1890년 2월의 발작은 가장 길고 심각해 4월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은 그가 2월 22일에 아를로 지누 부인에게 자기가 그린 ‘아를 여인’을 전해주기 위해 외출하였는데 그날 저녁에 돌아오지 않아 빼롱 박사는 차와 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형님이 요양원 밖으로 외출하였다가 돌아 온 다음에는 발작이 일어나고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행동할 때는 언제나 과도한 흥분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외출과 발작은 반 고흐와 의사 사이에 묵인과 위장이라는 괴상한 관계를 만들어 내다가 그 도가 지나치자 의사는 이를 테오에게 통보하였던 것이다.

사실 술꾼이 술을 끊기란 마약을 끊기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생 레미에 있을 때 반 고흐는 도비에의 그림 ‘술꾼들’을 본뜬 그림을 그리면서 음주 충동을 달랬던 것 같다.

무경련성 ‘착란 (錯亂)’ 상태의 압생트 중독자는 내면적인 지표를 잃고 괴상한 행동과 조리에 닿지 않는 말을 하며 멍한 상태로 고통받는다. 압생트 중독 때 중독의 한 증상으로 청각적인 환각 즉 환청(비난의 목소리와 감금하겠다는 협박)과 시각적인 착각 즉 착시(화재, 해골, 무서운 유령, 끔직한 짐승) 현상이 나타난다. 또 발작 중에 떠오르는 사람들도 마치 먼 곳에서 온 사람 같아 그들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데 반 고흐도 이런 것을 경험하였다고 했다. 또 압생트 중독자는 성격이 혼란해진다. 성마름, 흥분, 권위적 태도, 분노 등이 나타나 그 성격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아를에서 2개월간 같이 공동생활을 한 고갱의 회상록에 잘 나타나 있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작업실이 너무나 더럽다는 것과 .... 비탄의 저변에 놓여 있는 이성이 실타래처럼 뒤얽힌 그의 사고로부터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나는 그의 그림과 말이 빚어내는 모순을 도저히 해명할 길이 없었다.’ 라고.

글 : 문국진 ( 고대의대 명예교수 )


압생트는 아니스(Anis)씨와 감초 그리고 쑥의 수종의 약초와 향료를 원료로 배합하여 만든 리큐르로써, 일명 ‘녹색의 마주’라고 합니다. 물을 가하면 오팔 모양이 되고 태양광선을 쏘이면 일곱가지 색으로 빛나며, 물이든 글라스에 뻬르노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물이 차츰 유백색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감초 비슷한 맛과 오팔색을 띄고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는 너무 독하기 때문에 보통 약 4~ 5배의 물을 타서 마신다고 합니다. 알콜도수가 높은 편이고 단맛나는 압생트는 45℃, 단맛이 없는 압생트는 68℃까지 간다고 하니 어마어마 하지요...?

또한 향쑥 특유의 맛이 있어 각설탕과 녹여서 먹는데 압셍트 전용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스푼위에 설탕을 놓고 불로 녹인 다음 먹는다고 해요.  오른쪽 기구가 '압셍트의 샘'이라 불리우는 압셍트 희석용 도구 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하숙집 아저씨의 표정이며 상황이 너무 재미있지만, 그땐 참 어이없고 억울했습니다 . 어리버리+순진무구한 동양인 여자아이가 중독성 강한 술을 사고싶다고 말했으니 그 아저씨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시죠? "어마낫. 너 그런 애였니? 울랄라" 뭐 이런 표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압생트가 최근에는 환각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실제로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는 거죠! 이제라도 이 억울함을 풀고 싶은데, 그 하숙집 아저씨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요? 아님 편지라도 쓸까요? 에휴. 벌써 10년도 지난 일인데, 다 필요없고 그냥 그 술을 한잔 마셔보고 싶습니다. 내 젊은 날의 초록요정을 만나는 기분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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