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릴 적에 이런 저런 이유로 부모님께 잔소리들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초록별! 너 오늘 등교할 때 횡단보도에서 손 안 들고 건넜다면서?", "동네에서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잘 해야지!", "숙제는 미리 미리 해야지!" 등등. 어떻게 우리 엄마는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을 모두 다 알까 싶을 정도로 제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워낙 아빠를 꼭 빼닮아서 길을 가다가 "너 혹시 ***씨네 아이 아니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제 붕어빵 외모도 부모님의 스토킹(?)에 한 몫을 했으리라 봅니다. 

그 시절엔 그런 '부모님표' 가르침들이 참 성가시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내용들이 사소하지 않으며 매우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언컨대, 저희 부모님은 제게 참 훌륭한 스승님입니다. 평소의 행동가짐에 대한 부분부터 인간 관계, 직업관, 인생관까지 다양하고 진솔한 가르침을 주시니까요. 물론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소탈하고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을 해주시곤 합니다. 잘 따르지는 못할 때가 많지만,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도록 잘 적어두어 마음에 새기고픈 욕심에 글로 적어 둡니다.

1. "쓸데없는 자랑은 삼가라": 삼가라는 것은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며, 꺼리는 마음으로 양이나 횟수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이니, 적절한 수준의 자기 홍보는 필요하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려니와, 이유없는 시샘을 불러 오기 쉽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이니, 좋은 일이 있을수록 더욱 겸손하게 행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굳이 자랑을 꼭 하고 싶다면, 그 날은 반드시 네가 베풀어라": 네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날 밥은 반드시 네가 사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남이 잘되는 건 배가 아픈 법이다. 축하 받을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먼저 베풀어야 상대방에게도 진심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다. 네가 잘되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겨야 한다. 작은 것을 아끼자고 괜한 시기나 질투를 사지 마라. 너의 성공을 기뻐하고, 축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3. "작은 나무는 큰 나무 그늘에서는 클 수 없지만, 사람은 큰 사람 옆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 옆에 있다보면, 간혹 힘든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 사람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론 손해 보는 경우가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꿋꿋이 참고 그의 옆에서 배워라. 네가 그 사람 만큼 성장할 때까지 그가 네 곁에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4. "약게 굴지 마라": 가까운 앞날 만을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이롭게 꾀를 부리는 사람은 크게 되지 못한다. 어리숙해 보일지라도, 착하고 정직한 것이 낫다. 짧게 바라보면 꾀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마치 많은 것을 얻는 양 느껴지겠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며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을 오히려 잃게 될 것이다. 영리하면서도 선하면 가장 좋겠지만, 굳이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선한 것이 우선이다. 타인의 고통에 기반을 둔 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5.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현재의 직업에 안주하지 말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일을 한다는 것은 경제력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과 인간 관계 면에서도 참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미리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는 시기는 안정된 직업과 서로 겹치는 기간이 필요하다. 하나를 끝마치고 다른 하나를 시작하려고 하지 마라. 안정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는 조급함 때문에 쓸데없이 서두르게 되어 일을 그르치게 된다.

6.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지 마라": 사업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될 때에 스스로의 안목을 지나치게 믿지 마라.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 어떤 이들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기 때문이다.

7.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에 휩싸이지 마라":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건 네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 뿐이다. 네가 그를 미워한다고 해서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 마음만 지치게 될 뿐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을 미워하지 마라.

8. "사람들과의 교제를 즐겨라": 친구를 사귀는 것도 때로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나는 것이 때로는 귀찮다 할지라도, 만남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라. 나이가 들면 인생이 무료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 온다. 이때엔 경제력 만큼이나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해질 것이다.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기쁘게 맞아주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모든 것이 교제의 일부분이다.

9. "건강을 소중히 여겨라": 평소 건강 관리에 신경 쓰고, 몸이 안 좋다고 느껴지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가라. 초기 진찰을 미루다보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 한 군데 병원만 가서는 안되고, 여러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10.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라":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외적으로도 외모에 항상 신경 쓰고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맹수의 왕 호랑이도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 가운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섬세하게 신경써야 한다.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부모님 말씀을 잘 기록하여 마음 속에 새기고 기억하기 위함도 있지만, 인생을 잘 사는 비법을 가르치는 거창한 서적들에 대한 회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정말 미친듯이 사서 읽었던 자기계발서가 조금씩 싫어지더니, 이젠 그걸 읽다 보면 참 슬픈 마음이 들곤 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는 XX가지 비결이라든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비법이라든가, 소위 잘나가는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알려주시는 자기계발서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이 말하는 내용 안에는 "성공을 위한 이런 이런 방법들이 있어! (= 네가 지금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런 이런 방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 라는 기묘한 등식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걸 모르던 때에는 그들의 방식을 모두 따르지 못하던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이제 보니 단순히 제 탓 만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 책을 지은 분들이 일부러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니겠으나 은연 중에 그분들은 용기를 준다는 명목 하에 자신을 Winner로 묘사하면서 독자를 심리적 측면에서 Loser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제가 부모님의 조언을 들을 때 편안한 이유는 이야기의 서두나 말미에는 늘 이런 말이 붙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엄청나게 잘난 인간이라서 건네는 말이 아니라, 인생을 오래 살아보니 내가 사랑하는 우리 딸들은 이렇게 인생을 살면 좋겠다 라는 작은 바람을 갖고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녀의 성장을 위해 진심을 다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듣는 이의 마음에 더욱 따뜻하게 와닿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생에 관한 훌륭한 조언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아들, 딸에게 이어지는 형태가 되나 봅니다. 성경 속의 잠언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참된 지혜의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가족끼리의 이야기이니 부모 입장에서도 거창하게 꾸밀 필요도 없고, 자녀 역시 그 이야기를 상대의 거만함으로 받아 들이기 보다는, 인생의 조언으로 마음을 열고 들을 수 있으니까요.

모든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가르침을 주십니다. 자기계발서를 이제 덮고서 부모님의 말씀에 잠시 귀기울여 보세요.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러나 오직 당신을 위해 진심을 갖고 전해주고자 하는 그분들만의 지혜가 분명 숨겨져 있으실 것입니다. 열심히 귀기울여 들으시고 제게도 그걸 이야기 해주세요. 여러분 부모님의 잠언은 어떤 내용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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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말간 하늘빛을 닮은 정말 예쁘고 동그란 돌 두 개를 우연히 갖게 되었습니다. 그 색깔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요. 하늘이 조금씩 녹아서 투명한 돌에 그 색이 물든 것 처럼 푸른 파스텔톤이었죠. 게다가 손에 쥐고 있으면 차갑지만 매끈하게 한 손에 잡히는 촉감이 너무 좋아서 마음까지 포근해졌어요. 가끔 그 돌맹이 두 개를 달그락 거리며 쥐고 있으면 지구의 한 조각을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수백 수천년 전에 이 하늘색 돌은 광활한 지구의 어딘가에서 생겨났겠죠. 물론 지금은 제가 잠시 갖고 있지만 제가 죽고서도 수백 수천년동안 이 돌맹이는 또다시 영겁의 시간동안 아무렇지 않게 이 땅 위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보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찌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이 세상에 온전히, 그리고 영원하게 나만의 것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나의 하늘색 돌, 나의 마음, 나의 몸, 그리고 나의 사랑조차도 애초에 나만의 것이란 건 없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너무 공허했습니다. 조금은 슬프고 우울해졌지요.

결국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언젠가 그것을 잃게 된다는 걸 전제합니다. 애초에 갖지 않았더라면 잃게 되지도 않았겠지만, 일단 가졌던 것들은 또 언젠가는 놓고 가야 하는 것을 배우는 게 인생이니까요. 슬프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오늘이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기에 오늘이 더 가치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이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다가 끄적여 봅니다.

여자들의 수다에는 참 다양한 주제들이 오가곤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증권가 찌라시에 나온 모 연예인에 관한 소문, 요즘 패션 트랜드, 어제 본 드라마까지 말이죠. 그 중 단골 소재는 '나쁜 남자'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 첫날에 남편이 부인을 때렸다더라, 친구의 애인이 천인공노할 나쁜 짓을 했는데도, 친구는 그 애인을 용서했다더라...등등...

참 딱한 사연도 있고, 너무 엽기적이라 개그나 드라마 소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어서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듣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왜 헤어지지 않는걸까? 그녀들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기에 그런 형편없는 남자에게 빠져서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걸까? 정작 착하고 한결같은 남자의 가치는 왜 과소평가 받는걸까? 소위 "나쁜 남자 (또는 나쁜 여자) 신드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곰곰히 이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대학시절에 들었던 강의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아동 심리학 수업이였는데, '강화'에 대한 부분이었지요. 사람의 행동이 반복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어떤 행동을 했을 때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착한 행동을 했을 때에 칭찬을 해줌으로써,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도록 강화시키는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스키너는 이를 동물 실험에 접목하여, 생쥐의 먹이 상자 옆에 지렛대를 만들어서 그걸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장치를 설치했는데요.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에 먹이라는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이 강화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지요. 이게 그 유명한 스키너상자입니다.

그런데 이 실험의 조건들을 약간씩 변형해서 적용해보던 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강화 효과는 규칙적으로 보상이 일어날 때보다 간헐적으로 보상이 이루어질 때에 더욱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가령 쥐가 지렛대를 한번 누르면 먹이가 한알씩 규칙적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강화시키는 것 보다는, 어떨 때엔 세번 누르면 먹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엔 한번 만에 먹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열번을 누르니까 먹이가 나오기도 하는 방식으로 강화를 시키면 그 습관이 잘 없어지지 않더라는 말이죠. 이를 간헐 강화 (intermittent reinforcement)라고 부르는데, 의외성이나 불규칙성 때문에 대상에 대해 싫증이 덜 나게 되고 중독성이 없어지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간헐 강화에서의 핵심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보상이 주어질수록 강화 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지렛대를 누르다 보면 언젠가는 보상이 나올 것 같다는 환상에 빠져 계속 지렛대를 누르고 있는 생쥐의 모습....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맞습니다. 카지노에서 대박을 기대하며 슬롯머신을 돌리는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먹이상자에서 먹이가 나오길 기대하며 끊임없이 지렛대를 누르는 생쥐의 까만 눈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또한 대어의 환상에 취해 밤새 낚시질을 하는 낚시광들의 모습도, 정기적인 급여보다 PS(Profit Sharing) 나 PI(Productivity Incentive)에 열광하는 직장인의 모습도 사실은 간헐강화의 결과물입니다.

그럼 이제 나쁜 남자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나쁜 남자의 핵심 포인트는 "나쁜 행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번씩 잘해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매일 잘해주던 남편이 어쩌다 한번 짜증을 내면 배우자는 굉장히 분노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짜증을 내던 남편이 어쩌다가 한번 귤 한 봉지를 사들고 오면 부인은 감동합니다. 나쁜 남자가 그걸 계산하고 한 행동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든 간에 상대방은 이미 그 나쁜 남자의 간헐적인 보상 방식에 '중독'됩니다. 착한 남자가 '매일 매일 먹이 한알' 방식의 일률적인 보상을 하는 동안에 소위 밀땅 잘하는 나쁜 남자는 '먹이 주는 건 내맘대로'라고 하면서 상대를 휘어잡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애인, 또는 나쁜 남편, 나쁜 아내가 진정한 승자이고 심리학의 귀재이며 모든 사람들의 열망의 대상이 되나요? 아니죠. 이상하게 나쁜 남자에게 쉽게 당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당하고, 다음 사람에게 또 당하고, 다음 번에 또다른 남자에게 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자꾸 당하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적당히 당하면 만나지 말아야 할텐데 포기하지도 않고 계속 나쁜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그녀들이 나쁜 남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심리적인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저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로 자신이 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입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더욱 광적으로 종교활동에 심취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게, 그녀들은 자신이 '어리석게 나쁜 남자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그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더욱 더 나쁜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두번째로 그녀들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초기에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당한 선을 벗어날 정도로 상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이를 제지하여 관계의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초기에 그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더라는 거죠. 상대방이 용인되는 행동 이상의 잘못을 하면 단호히 대처해서 그 행동을 고치든가, 정 고쳐지지 않으면 이별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인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A라는 사람에게는 천사표였던 사람도, B라는 사람에게는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좋은 인품을 이끌어 내는 것도 일종의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대개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이 나쁜 남자에게 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어릴 때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경우엔 "내가 못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건데, 어쩔 수 없지" 라고 자포자기 합니다. 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과소평가를 당하게 되면 "내 가치를 모르다니, 넌 참 멍청해. 난 훨씬 더 가치있는 사람이니,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어"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이별을 택하지요.

그러니 이제 나쁜 남자는 만나지 마세요. 남들에게는 참 다정한데, 당신에게만 나쁘게 굴던가요? 그럼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어쩜 당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라요. 또는 당신이 그 사람의 좋은 인격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당신과 그는 화학적으로 안 맞는 것일지도 모르죠. 여하튼 어떤 쪽이 되었건 자신을 형편없게 대하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마세요. 흔한 광고 카피처럼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이젠 스키너의 상자에서 탈출해서, 간헐 강화의 지독한 중독에서 벗어나세요. 가끔 당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고 항~상 잘해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당신에겐 충분히 있습니다.

"차장님! 애니팡 해보셨어요?"

응? 애니팡? 그게 뭔데?? 가로 또는 세로로 똑같은 그림을 세 개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인데, 카카오톡에 등록된 사람들끼리 순위 경쟁도 할 수 있어서 요즘 인기 많은 게임이라는 설명이 이어 집니다. 세개의 그림을 맞추는 게임들은 내가 어릴 적에도 있었던 단순하고 흔한 게임인데 그런 게 요즘 인기가 많다니... 그럼 나라고 빠질 수야 없지!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플을 다운 받아 시작합니다. 카톡에 등록된 지인들의 순위가 주르륵 뜨는 것으로 보아, 정말 요즘 핫한 어플이 맞긴 한가 봅니다. 몇 번 하다보니 순위가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뜨고, 한단계 한단계씩 순위가 올라갈 수록 이유없는 승부욕에 불타 그날 밤 1시까지 눈을 비비며 열중했죠!

그리고 다음 날도 퇴근을 하고서 다시 애니팡에 접속하여 게임을 하려다가 문득 궁금해 졌습니다. 정말 애니팡을 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으아...이기고 싶다. 내 바로 위에 랭크된 대학원 시절 친구를!!!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애니팡이라는 말을 넣었죠. 굉장한 것은 애니팡 이라는 말을 검색창에 넣자마자 '애니팡 고득점 방법'이라는 자동완성기능의 검색어가 떡하니 뜨더라는! 그 비법을 나만 궁금해 할 리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뭐 콤보를 많이 해야 한다는 둥, 콤보를 많이 했을 때 폭탄을 터뜨려야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등등의 비법들을 전수받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치면서 '아싸~ 난 이제 곧 애니팡 고수가 될껴!'라고 김칫국 1.5리터 3병쯤을 마시고 있었죠. 다른 고급정보가 없나 하고서 다시 네이버 메인창을 띄웠는데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네이버 메인창에서 추억의 '그 게임'의 배너광고를 마주한 것은요.

그 게임은 이름하야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블리자드의 검은 손길에 이끌려 시작했고 2004년의 수많은 밤들을 하얗게 불태우게끔 만들었던 바로 그 RPG... ㅠ.ㅠ 그 아련한 추억 속 게임 WOW의 4번째 확장팩인 "판다리아의 안개" 광고가 모니터를 통해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하아...첫사랑이 "나 기억해?" 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고있는 것 마냥 말이죠 (저 오른쪽의 광고 속 팬더가 웃는 걸로 보였냐구요? 거참! 이 사람이..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잊고 있었던 사실 - 나는 굉장히 쉽게 게임에 중독되는 사람이라는 가슴 아프고도 부끄러운 기억 - 을 되살려 냅니다. 광랩 (빛의 속도로 레벨 업을 한다는 뜻의 게임속어)을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손가락 관절이 쑤시도록 몰두했던 것이며, 다음 날 출근을 하든 말든 새벽까지 미친듯이 던전을 방황하던 것, 나중엔 허리가 아파서 갖가지 요가 자세들을 취하면서도 밤새 게임을 계속 했던 것까지....

추억 속에 잠시 젖어 있던 저는 WOW계정이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로그인을 했다가 시간 정액제로 소액을 결제하고 말았습니다. 접속해보니 제가 키우던 캐릭터가 아직도 살아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아) 있음에 한번 놀랐고, 아이언포지의 길을 달려 가다가 그 길 모퉁이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더 놀랐습니다. 추억의 옛 동네를 우연히 들러서 그 뒷골목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듯한 기묘한 그 느낌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선 스마트폰에서 살포시 '애니팡'을 지웠지요. 정확히 어플을 다운 받은 지 24시간 만에 정신 차린 셈입니다. 애니팡이 WOW보다 덜 재미있는 게임이어서가 아니고, 또다시 헛된 무언가에 미친듯이 매달리는 자신을 마주하기 싫더라구요. 처음엔 즐거움으로 시작했던 것이 내 에너지, 내 시간, 내 열정을 야금야금 먹고 자라나 어느 순간부터 그 집념은 거대한 괴물이 되고, 나도 모르게 그것에 집착하게 되어 결국 영혼까지 그것에 잠식 당하게 되는 뼈아픈 경험은 한번 만으로 족하니까요. 이건 게임중독이든 일중독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중독의 공통된 특성인가 봅니다. 중독이라는 이름의 그 길을 다시 달릴 뻔했는데, 옛 추억이 저를 구해준 셈입니다.

"어제 밤에 하트 보내드렸는데 받으셨어요?" 애니팡을 소개했던 직장 동료가 방긋 웃으며 묻습니다. 아~하트!!!! 아깝다. 그거나 한번 받아보고 지울걸~!!! ^^

어떤 사람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한다. 그러면 우리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로 갚아줄거야. 네가 내게 고통을 주었으니까 나도 너한테 고통을 줄거야. 네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난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 사람은 더욱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쌍방 모두가 갈수록 더 마음이 아파질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애정과 도움이다. 어느 쪽도 앙갚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화가 치밀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자신의 화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뿐이다.

- 틱 낫한 스님

나이가 드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계절을 타는 편이었는데 그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건지...여하튼 저는 요즘 봄 타고 있는 중(?)입니다. 성시경의 노래가 미치도록 감미롭게 들리고, 밖으로 뛰쳐나가 산보하고 싶어지고, 향수를 아침에 뿌리고서 '으앗. 너무 향기로와!!! ㅠ.ㅠ' 하면서 내 향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연신 손목을 킁킁거리게 됩니다. 사소한 감정들의 증폭, 그것이 바로 제가 요즘 봄을 탄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도 불어오는 봄바람에 괜히 마음 설레이며 퇴근길 신호등을 건너고 있었을 때에 사건은 벌어졌어요. 저는 운명처럼 편의점 유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제 어묵바 단 3일간 할인 1000원 → 500원!!! " 사실 저는 혼자 뭔가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혼자 먹는 건 재미가 없거든요. 게다가 편의점의 어묵바는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렴한 가격이 주는 불량 식품의 강한 선입견도 한몫했죠. 하지만 "수제"라는 문구와 자그마치 50% 할인이라는 점, 게다가 3일이라는 미치도록 설레이는 한정감...!!! 문제의 "문어바"를 500원에 구입하고서 집으로 왔죠. 

집에 있던 칠리소스에 따끈한 문어바를 찍어 한 입 베어 무는데, 그 순간 저는 감동했습니다. 미스터 초밥왕 못지 않은 폭풍 리액션이 나올 뻔 했어요. 쫄깃한 문어의 식감과 생선 연육의 조화, 어묵바가 매콤한 칠리소스와 만나 한데 어울어지는 조화!!! 꺄앗!!! 이거야~ 내일부터 출근할 때에 아침밥은 먹지 않고 아침마다 어묵바를 한개씩 먹을까? 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볼 정도였습니다. 만약 앞으로 당신이 어디에선가 30대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이른 아침에 편의점에서 혼자 울면서 문어바를 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흐음....상상해보니 참.... 주접스럽네요)

행복에 가격표가 있을까요? 다 큰 어른이 이 나이에 고작 500원짜리 어묵바를 먹고서 이렇게까지 행복해 해도 되는 건가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명품 가방, 해외여행 같은 값비싼 행복을 찾는 게 더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잖아요. 나날이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은 올라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럭셔리한 방식으로 여가를 즐기고, 고가의 물품을 소비하여 더 값비싼 행복을 *구입*하고 있죠.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날이 더 불행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행복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서를 경험하는 심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하다는 연구(Diener, Sandvik, & Pavot, 1991)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 하자면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얼마나 강한 정서적 자극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1년에 한번씩 사는 사람보다도 500원 짜리 - 1년이면 18만2천5백원에 해당하는 - 문어바를 매일 한 개씩 먹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행복엔 가격표가 없습니다. 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큰 돈을 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자주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내가 지금 무얼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500원짜리 문어바를 오늘도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취해 오늘 저는 기쁘게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참 사소하고도 작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 그리고 이렇게 작은 일에 행복해 할 수 있는 감성을 제게 주신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P.S. 편의점 앞에 도착한 제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드네요. 환상적인 천상의 맛을 선사하는 어묵바 50% 할인행사는요.....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나봐요.... 행복의 빈도? 사소한 행복? 큰 깨달음? 으아아아앙!!!! 이게 다 무슨 헛소리인가요.... 그냥 50% 할인해 주삼! ㅠ.ㅠ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순간, 누가 느릿느릿 걸어가고만 있겠는가!   -헬렌 켈러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그녀, 헬렌 켈러..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그 지점에서 끝이 나 있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한 여성의 삶에 대해서 다루기엔, 제 어린 시절의 반공 교육이 너무 철저했던 것일까요? 어떤 쪽이 되었건, 그녀의 삶은 참 치열했습니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깨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사회적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던 끊임없는 투쟁의 삶이라니...부끄럽게도 오늘의 저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안주하기에도 참 버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헬렌....하나만 여쭤볼께요. 

피로는 어떻게 깨셨나요??!!!! 히잉...전 지금 너무 피곤해요. 이 저주받은 저질 체력!

어떤 것이든 우리가 애정을 기울이다보면, 놀랍게도 그것 스스로가 생명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처음 이곳의 도메인을 구입한 것은 대학원 강의를 듣다가 일종의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었던 그 해 겨울에 앞으로 녹색산업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작은 불씨로 말미암아 이렇게 작은 둥지를 틀게 된 거죠. ^^

처음엔 글 하나 올리기가 참 쑥쓰럽고, 귀찮은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엔 하루 종일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화분을 키우는 마음으로 물도 주듯이, 햇빛도 쬐여주듯이 관심의 손길을 조금씩이나마 기울였고 간신히 관리를 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간이 제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습관처럼 쉽게 받아 들이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쩜 이 공간이 생명을 지니게 되어 제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조금씩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싶어졌습니다. 이 사이트에 누적된 방문자 분들의 숫자가 벌써 만천명이나 되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응원해 주세요.

선한 의지와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노르웨이 극우세력의 테러에 대한 방송을 잠시 보았는데요. 테러 직후의 노르웨이 총리 발언에 닭살이 오도도 돋았습니다. 옌스 총리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렇게 남겼대요. "더 강한 민주주의와 더 큰 관용의 정신으로 보복하겠다"

우리가 타인의 폭력이나 부당한 처사에 대응하는 방식은 대개 두가지로 나뉩니다. *힘으로 맞받아치기* 또는 *비굴하게 적당히 타협하기*
 
맞고도 되받아치지 않으면 바보취급하는 세상이니까 적당히 상대를 탐색해 보고 나보다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매우 강하게 나가구요. 상대가 강해 보이면, 적당히 비굴하게 굽히고 나가는거죠. 내가 만약 당하면 당한대로 되갚아 주어야 남들이 나를 얕잡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살아가요. tit for tat 전략의 생활화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옌스 총리는 더 큰 관용과 민주주의로 보복하겠노라고, 폭력으로 되갚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진짜 한 수 위라는 걸 보여주는 발언 아닙니까? 우리가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 하고, 무언가를 입증하려 하는 것들은 실상 상대에게 굉장히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겁 많은 강아지일수록 더 으르렁거리고 더 크게 짖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는 이들을 용기있다고 부르는 것이 맞나요? 테러나 폭력, 전쟁의 부당함에 대해서 주장하는 방식이 폭력이 된다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부당함에는 부당함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잃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죠.

결국 이것은 단지 인생의 불확실성을 대하는 방식이며,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하느나의 문제입니다. 타인에게 열린 자세를 취하고 다양성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내적으로 단단해야 합니다. "오란고교 사교클럽"이라는 다소 엉뚱발랄한 만화 속에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 들이는 것" 이라고요.

더욱 열린 사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자고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한 토크쇼에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의 어려운 부분이 뭐냐고 묻자 한 외국인이 답하길 "한국어에는 서로 비슷한 단어들이 많은데, 가령 파출부와 파출소는 너무 헷갈려요!" 라고 말하더라구요.

제게도 영어를 처음 공부했을 때, 참 어이없게 비슷해 보이던 단어가 있는데 바로 forgive와 forget입니다. for+give 와 for+get...어찌보면 닮았잖아요. for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단어들인데, 도대체 그 둘의 어떤 점이 닮았냐구요?

give와 get은 둘 다 소유와 관계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무언가를 준다는 것과 그것을 획득한다는 것은 소유권의 문제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get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쟁하고 싸웁니다.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바로 통제권이 되고, 영향력이 되고, 권력이 되니까요. 현대 사회는 소유와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잖아요. 심지어 교회조차도 신앙과 물질적 축복의 관계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내려 놓기 전까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의외로 참 많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행위를 통해 얻는 기쁨을 생각해 보세요. 내 양 손에 모든 걸 움켜 쥐려 하다보면, 정작 소중한 것을 get 할 수 없게 됩니다.

forgive와 forget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누군가를 용서하기 전까지는 망각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혹시 아직도 상대 또는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 잘 생각해 보세요.

결국 give와 get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forgive와 forget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