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가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녀의 소름끼치는 가창력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 배시시 웃었더랬습니다. 제 추억 속의 머라이어 캐리는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살짝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돌고래 가창력의 대명사였으니까요. 회사 동호회에서 다 같이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설레는 마음으로 저 역시 냉큼 신청을 했지요. 일본 공연에서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혹평을 받았다는 신문기사를 읽긴 했지만, 설마 설마 했습니다. 공연 당일에 올림픽공원에서 제 눈으로 직접 그녀의 무대를 보면서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지요. 서너 곡쯤이 흐르고 나니, 심지어 좌석을 떠나는 관객들까지 나타났고요. 어떤 이는 아예 무대를 등지고서 그날의 개기일식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Emotion의 반주가 흐르자 초반에 환호하던 관객들조차 그녀의 형편없는 노래가 흐르자, 싸늘한 침묵과 함께 실망의 탄식까지 나왔습니다. 이 지점에 이르자 한 때의 디바였던 머라이어 캐리에게 짠한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귀여운 아이들을 녹화한 동영상이 무대 스크린을 통해 보여질 때에 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뮤즈였던 여신이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건가... 엄마가 되고 나이가 들면, 성대도 일종의 근육이니 예전같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인데 내가 혹여 그녀에게 너무 과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닌가.... 그 비싼 가격이 무색한 형편없는 노래로 들으면서, 너무 과한 것을 기대한 자신을 반성했었습니다.  

공연 시작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등장한 그녀는 참 실망스러운 공연을 내내 보여주고서 마지막 곡으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렀습니다. 그리고선 Thank you 를 딱 세번 외치고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게 공연이 끝났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정말 이게 끝이냐고 서로 물었습니다. 관객의 박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작별 인사는 없었고 커튼콜 역시 당연히(?) 없었으며 그렇게 허무하게 추억 속 디바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는 그녀의 노래보다 그 태도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만.약.에. 그녀가 아티스트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성의를 한국 팬들에게 보였다면 저는 이런 글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나이가 들었으니까 목소리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그 무대를 준비한 코러스와 악기 연주자, 댄서와 모든 스탭의 노력 덕택에 빛나는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귀가 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라이어 캐리를 뺀 공연의 나머지 부분들은 실제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돌고래 창법의 환상적인 추억 속 디바는 이미 사라지고,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뻔뻔하게 노래를 부르며 관객에 대한 예의도 모른 채 공연 수익만 노리는 야시시한 드레스 차림의 탐욕스러운 여성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바로 오늘, 제가 사는 동네의 작은 아트홀에서 '로스 로메로스' 공연을 봤어요. 다소 따분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서 예매한 클래식 기타 공연이었는데, 정말 기분 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제지간인 할아버지 두 명과 그 할아버지의 아들과 조카, 이렇게 네 명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2시간을 꽉 채웠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갔던 연주회였는데, 그 두 시간동안 말도 안되게 행복했습니다. 풍부한 감성과 뛰어난 기교의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곡이 끝날 때마다 할아버지 연주자들의 행복한 미소에서 그들의 온화한 에너지가 모두에게 따뜻하게 전해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서도 끝없이 환호하는 관객들을 위해 이 분들은 무대를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오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아름다운 앙콜곡들로 화답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연주한다고는 해도, 오로지 기타 소리 만으로 이렇게 꽉 채워진 음악이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 명이 독주를 펼칠 때엔 혼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했으며, 네 명이 함께 연주할 때에는 마치 한 명이 연주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화려한 테크닉과 유려한 스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감성이 녹아있는 연주였어요. 기타 현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품고 있는 줄 몰랐는데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현악기가 갖는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때로는 달콤하게 현을 가볍게 훑고, 때로는 거문고처럼 애절하게 퉁기고, 또한 때로는 카혼처럼 경쾌하게 기타의 몸통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3대째 기타를 연주하는 가문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무대였습니다. 이 멋진 가족을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또다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요?  겉만 번지르르한 장사꾼 M양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소박한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치유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싼 건 나쁜 법이 있어도, 싼 건 좋은 법이 없다던가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머라이어 캐리 내한공연 티켓가격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이렇게 빼어난 공연을 만끽했으니까요. 음악가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다고요? 그 말도 틀렸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는 머라이어 캐리의 녹슨 성대를 간단히 비웃었어요. 뭐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그런 비교 자체가 로스 로메로스와 같은 훌륭한 아티스트 패밀리에게는 모욕이니까요.  (어딜, 감히!!! 결론은 기.승.전.... 로스 로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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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제 비밀 한 가지를 솔직하게 털어 놓겠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 짧고 보잘 것 없는 글을 하나 올릴 때조차 그 안에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제 나름의 철학과 주장을 슬쩍 숨겨 놓습니다. 블로그의 짧은 메모, 하찮은 손뜨개질,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흔들린 사진조차 그것만의 의미가 있을진데, 정성을 담아 만든 작품은 오죽하겠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닥치는대로 아무 뜻없이 허투루 할 리가 만무합니다.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글을 쓸 때에 사람들은 끊임없는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당나라의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다(僧推月下門)’란 시구를 써 놓고 ‘밀 퇴(推)’ 를 쓸 지, ‘두드릴 고(敲)’를 쓸 지 고뇌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작가들은 퇴고(推敲)의 과정을 거치며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주제의 결정부터 단어의 선택까지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관념의 일부분이 투영이 되고 그 생각의 조각들이 작품 속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 숨어 있는 복잡한 은유의 퍼즐을 하나 하나씩 뜯어서 맞춰보고 그 속의 숨은 그림들을 찾아보는 과정들은 참 재미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그 단순하고 유치한 줄거리 속에 숨겨진 뜻에 탄복하기도 하고, 감동해서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가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눈에 잘 띄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슨 가족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으니,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는다고나 할까요. 헤헤..^^

이렇게 만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탓인지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을 우연히 보며 기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굉장히 충격적인 스토리이긴 한데, 뭔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죠.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과 어딘지 모르게 어그러진 느낌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애니메이션을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은 아직 완결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 작품을 잘 모르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줄거리의 일부를 말씀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을 포식하는 다수의 거대생물 '거인'의 침공에 의해 인류는 존망의 위기에 직면한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삼중으로 구축된 거대한 성벽안에서 사는 것으로 일시적인 안전을 얻게 된다. 성벽으로 인한 평화를 얻고 나서 약 100년 후, 부모님과 소꿉친구 미카사와 함께 살던 소년 엘런은 친구 아르민과 성벽밖으로 나가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히 나타난 초대형거인에 의해 외벽이 부서지고 그 구멍을 통해 다수의 거인이 시가지에 침입, 그로 인해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엘런은 복수를 맹세한다. 벽의 붕괴로부터 2년 후 엘런, 미카사, 아르민 세 명은 제 104기 훈련병단에 입단하여 동기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한다. (출처: 위키백과)

높은 벽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던 인간들의 안이한 평화는 결국 거인의 침공으로 인해 산산 조각나며, 인류는 또다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스토리에 나오는 성벽과 거인의 메타포(metaphor)를 관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자비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떠올릴테고, 어떤 이들은 전쟁과도 같은 현대인의 삶을 떠올릴 테죠. 어떤 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각할테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작품 속 상징의 의미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진격의 거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역사 인식에 관한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최근 하시모토의 위안부 관련 망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논쟁으로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내용들 때문에 이런 관점으로 만화를 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의구심은 아주 사소한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왜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 속 주인공은 항상 작게 묘사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캐릭터 -가령 아톰과 왕눈이, 케로로- 들은 아주 작고 선하며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 갑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2차대전이 패전으로 끝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던 일본인들은 작고 불완전한 아톰의 칠전팔기 스토리를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었을 것입니다. 왕눈이는 비록 가난하고 깡마른 아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투투가 아무리 구박해도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넘어져도 일어나 피리를 부는 초긍정 개구리입니다. 케로로는 지구 침략의 음모를 갖고 지구에 왔다고 공공연히 떠들지만, 이 귀요미 개구리 중사는 매일 개그혼을 불태우며 우주네 집안 청소를 담당합니다.

"진격의 거인" 속 주인공 역시 거인에 비해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이며, 그의 이웃과 가족은 그 도륙의 현장에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끔찍하게 잡아 먹히고 맙니다. 결국 작다는 것은 연약함을 의미하며, 그렇기에 동정의 대상이 되어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작은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거대한 존재에게 저항을 시작할 때에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유린 당하던 작고 힘없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을 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일본은 작습니까? 일본은 진정한 피해자 입니까?

2차 세계대전은 일본을 비롯한 독일, 이탈리아가 주축이 되어 벌인 세계 규모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세계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인명 피해가 있었지요.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지만 실제로 일본이 한 일은 피점령국의 주요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스스로 시작했던 전쟁이었고 식민지와 점령지의 독립을 탄압한 가해자 신분에 다름 아니었지만, 1945년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으며 이때 오묘하고도 불합리한 심리적 치환이 발생합니다. 전쟁의 가해자가 일순간에 원폭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히로시마 원폭은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낳은 참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자였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일본은 패전 이후 세계대전에 대한 대외적 책임을 지고 육해공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자국의 치안유지를 명분으로 경찰 예비대를 창설했고 그것이 현재는 자위대라는 명칭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1947년에 시행된 일본의 평화헌법에는 국가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평화헌법의 정신과 배치되는 형태로 1950년대 이후 계속해서 자위대의 전력을 확충하고 1990년대부터는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집단자위권 행사 등의 명목으로 헌법을 바꾸면서까지 명실상부한 일본의 군대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을 검토해 왔습니다. (참고문헌: 두산백과 자위대 편)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만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자위대, 이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성벽의 역할과 묘하게 닮아 있지요. 성벽(자위대)은 보호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진격의 자유를 막는 감옥이기도 합니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평화가 유지되었기에 성벽(자위대)의 보호 기능에 대해서 자국민의 신뢰가 지나치게 강해졌으나 이 믿음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는 경고입니다. 진정한 평화 유지를 위해선 자위대가 자국을 방어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며, 적극적 공격권과 강력한 공격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들 자신의 눈에 비춰진 "작은 일본", "피해자인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죠.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거인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용맹한 훈련병단에 자원입대하라고 속삭이는 것이지요. (참고로 일본의 자위대는 모병제로써, 징병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18세 이상 27세 이하 일본 국적의 남성들이 자원입대해야만 병력 유지가 가능합니다)

사실 일본이 과거에 전쟁을 일으켰었다는 이유만으로 영구적으로 군대가 아닌 자위대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법도 합니다. 일본과 함께 2차대전의 주축국이었던 독일도 현재 자국의 군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헌법 9조는 일본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전쟁할 권리인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있었으나, 최근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이 헌법 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에 주변국들은 술렁이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2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과 일본,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독일과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 침략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본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겠다는 주장에 주변국들이 왜 그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두 국가는 전쟁 이후에 정반대의 다른 방향으로 달려 왔기 때문이지요. 독일은 과거에 자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해 왔습니다. 일례로 독일의 2차 대전 패망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당시 독일연방공화국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 나치 독일이 저지른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만행을 조금도 미화함 없이 후세대에 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와 같이 독일은 전후에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했고, 학생들의 역사 교육까지도 이를 반영했지요. 가천대 명예 총장으로 계시는 이성낙 님께서는 신문에 기고하신 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계십니다.

"1960년대 초 독일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독일 친구들이 나치 과거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느꼈다. 자기들의 ‘아픈 과거사’라 그러려니 했다. 몇 년이 지나 비슷한 계기에 독일 친구가 역시 같은 반응을 보여 조용하게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전후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나치 독일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답변이었다. 필자는 6·25 동란사를 분명 고교시절 역사시간에 배웠기에 더욱 의아해했다.

수년 전 바로 그 친구에게 요즘도 독일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나치 독일에 대해 가르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아니 배우겠냐고 놀라워하기에, “오래전 네가 학교에서 나치 만행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그야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역사교육 담당 교사들은 필연적으로 나치 시대를 몸소 격하게 체험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치 관련 역사를 학생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교육당국이 정책적으로 현대역사를 교육목록에서 아예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실로 참신한 교육의 역동성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사에 대한 독일 국가와 국민들의 철저한 반성의지를 향한 공감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 국민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심이 있었기에 화려한 수사에서 끝나지 않고 범국민적 반성이 따를 수 있었겠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 나치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며 아직까지도 독일 정부는 전범 관련자를 찾아내 재판에 회부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심지어 정치인이 앞장서서 위안부나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 일본이 틈만 나면 외적으로는 군비를 증강하면서 문화적으로는 이런 만화를 제작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참 씁쓸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색안경을 끼고 보면 정치적인 색채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들 가운데 아이언맨이나 배트맨과 같은 영화들은 공화당의 이념을 담고 있으며, 공공연하게 미국 군수업체들의 투자를 받아 제작되는 헐리우드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자국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할 수 있는 만화를 만듭니다. 저는 그걸 욕할 마음도 없고 그런 작품들을 수입하지 말자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며 제가 상관할 바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제 '숨은그림찾기'를 다른 분들께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뚜렷하고 올바른 역사관만은 부디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분별하게 타국의 문화와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관점을 계속 접하다보면, 조금씩 동화됩니다. 일본인들이 일본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애국"이며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의 역사의식과 관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객관적 관점이란 절대 없으며, 숨겨진 뜻이 없는 작품은 단연코 없으니까요.

수용미학(受容美學)에 따르면, 텍스트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으로서 읽혀지는 과정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즉,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인지되고 이해될 때에 그것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작품의 은유가 뜻하는 바 역시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요. 따라서 "진격의 거인"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면 됩니다.

"진격의 거인"은 아직 완결도 나오지 않은 작품인데다 포스팅의 주제 자체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라 이 글을 적을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뭔지 아느냐고 하는 기자의 질문에 신사/숙녀 할때의 그 신사가 아니냐고 답하는 고등학생의 인터뷰를 보면서 제가 감정적으로 욱해진 탓도 있을 거에요. 부디 너른 마음으로 저의 치기 어린 포스팅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저는 파시즘이나 민족주의에는 관심도 없고 그런 방향을 갖자는 것도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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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마카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일종의 "마카오 관광청 홍보 사진전" 였는데, 이국적인 느낌의 파스텔 톤 건물들이며, 아기자기한 골목들, 그리고 먹음직한 에그타르트의 자태(!)가 사진 속에는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카오는 1999년까지는 포르투갈 령이었기 때문에 유럽식 건축양식이 마카오의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매혹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나중에 마카오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게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 줄도 몰랐고 '그냥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선 그때 일을 까맣게 잊고, 올해 여름 휴가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가본 적 없는 장소로 휴가를 떠나고 싶었고, 휴가를 길게 내긴 힘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이곳 저곳을 알아 보다가, 홍콩으로 마음을 정하고 에어텔 팩키지로 3박 4일 상품을 예약하게 되었죠.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예약만 해놓고서 구체적인 여행일정은 짜지도 못하다가 휴가를 일주일 앞두고서 여행일정들을 짜기 시작했는데요. 이때서야 제가 사진 속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마카오가 홍콩에서 배로 한시간 남짓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헉! 내가 사진 속에서 봤던 바로 그 마카오가 홍콩에서 그렇게 가깝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홍콩여행 3박 4일 기간 중에 하루는 마카오 관광을 다녀왔지요. 세나도 광장, 성 도미니크 성당, 몬테요새, 콜리안 빌리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 그리고 환상적인 맛의 로드 스토우즈 에그타르트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좋았지만 그 중의 백미는 바로 시티 오브 드림즈 리조트에서 본 대규모 수중 쇼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House of Dancing Water)'였습니다.

사실은 이렇게까지 굉장한 쇼인줄 모르고서 관람을 했는데요. 공연 끝나고나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구요. 공연이 끝나고서 나올 때 우연히 다른 관람객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이 공연이 무려 3,000억원을 들여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그 돈을 들였을 법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수중과 육상무대가 자유자재로 변환되는 전용극장에서 다이빙, 아크로바틱, 러시안 그네, 분수 쇼, 모터바이크 등의 갖가지 볼거리가 90분 공연동안 다양하게 펼쳐지더군요. 

원형 무대의 잔잔했던 물에서 해적들이 매달린 어마어마한 높이의 돛이 솟아 오르기도 하구요. 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수중무대가 사라지고 지상무대로 바뀌기도 합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예매하고서 앞에서 세번째 줄에서 공연을 관람했는데, 앞쪽 좌석은 물이 튀길 수 있어서 좌석마다 수건이 놓여 있더라구요. 공연을 보는 동안에 물 속에서 튀어나온 배우들이 장난스럽게 관객석으로 물을 튀기기도 했고,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다이빙 하는 배우들 때문에 조금씩 물에 젖기도 했는데 이 역시 소소한 재미였어요. 이 수중공연장은 무려 깊이 8m, 지름 49m의 규모인데, 이 곳엔 올림픽 공식 수영장보다 5배나 많은 물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공연장의 천장도 굉장히 높은데, 공연 말미에는 무려 26.5m 높이에서 배우가 다이빙합니다.

이 공연의 예술 감독은 프랑코 드라곤 이라는 연출가인데 이 분은 20여년간 태양의 서커스에 몸 담으며, 라스베거스의 유명 쇼인 '퀴담', '알레그리아', 'O' 등을 만든 분이라고 하네요. 이 공연에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칠정(七情)을 바탕으로 중국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며 특별한 대사없이 쇼 자체로 줄거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국적과 상관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스토리 자체에 기대하시면 조금 실망하실 수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들과 연기자들의 '진기명기'에 가까운 묘기들은 어떤 공연에 뒤지지 않습니다. 혹시 마카오에 놀러 가시는 분들께는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공연 예매는 공식 홈페이지인 http://thehouseofdancingwater.com/en/에서 가능합니다. 좌석 구역과 등급을 선택하면 다소 랜덤하게 좌석이 배정되는데요. 저는 마음에 드는 좌석을 받느라 열번 넘게 시도했던 것 같아요. 뭐 결국은 원형 극장이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앉든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몇 장면은 VIP 석이라면 더 좋았겠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가령 물안개가 자욱하게 무대 위에 생기면서 그 물안개 위로 아른하게 여인의 모습이 투사되어 떠오르는 장면 같은 부분은 정면이면 더 좋았겠죠. 참고로 저는 B Class 의 별표로 표시된 자리에서 관람했고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공중에서 펼쳐지는 연기들을 볼 때는 위로 올려다 봐야 했지만 힘들거나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B Class 이상에 한해 학생할인이 있으니, 학생 분들은 더욱 저렴하게 예매하실 수 있어요. 티켓을 받을 때에 한국 학생증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예매하실 때에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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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뮤지컬 위키드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너무 기뻐서 폴짝 폴짝 뛰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느무 보고 싶어했으나, 좌석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바로 그 Wicked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요. 내한공연의 비싼 티켓 가격 때문에 망설이다가 예매 시작일로부터 며칠 흐른 뒤에 예매 사이트에서 좌석을 조회해 봤는데! 이런 쉣!!!! 좋은 좌석이 그새 다 나간 거에요. 멘붕 상태에 잠시 빠졌으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죠!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맘껏 하면서 즐겁게 살자는 신념으로 티켓을 질렀습니다. Saint Paul님께서 이럴 때 꼭 필요한 명언을 하셨드만요. "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단 한번밖에 인생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캬...므찌당!!! 한 페이지 한페이지가 이렇게 소중한데, 그깟 티켓 가격이 대수인가요?!!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속에서 나쁜 마녀로 그려지는 서쪽 마녀가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이며, 사람들이 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상상에서 이야기는 펼쳐지는데요. 어린 시절에 오즈의 마법사를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콩쥐팥쥐 만큼 친숙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저처럼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라인을 더듬어 가다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묘하게 짬뽕되면서 결말은 안드로메다로 훌쩍 날아가곤 하죠. (개콘식으로 표현하자면...어디갔어? 어디갔어? 도로시 어디갔어? 강아지 토토는 또 어디갔어? 내 기억력은 다 어디갔어???)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어요. 번외편을 알기 전에 우선 본편에 해당하는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부터 속성으로 마스터하기! 그럼 시작해 해볼까요?

도로시는 캔자스주에서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도로시네 집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러 날아가고, 도로시는 아름다운 오즈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집이 떨어진 곳은 다름 아닌 동쪽 마녀가 있었던 곳! 나쁜 동쪽 마녀를 실수로 죽이고서 도로시는 동쪽 마녀의 구두를 신고 켄자스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오즈의 나라는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의 다섯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신기한 왕국으로 온갖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와 마녀들이 다스리고 있었어요. 착한 마녀로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부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도로시는 오즈가 살고 있는 에메랄드 시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지요. 여행길에서 도로시는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어하는 겁쟁이 사자를 만나 동행하게 되요. 

마침내 아름다운 에메랄드 시에 도착한 도로시와 그 친구들은 위대한 오즈 마법사에게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오즈는 윙키들을 다스리고 있는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를 없애기 전에는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갖가지 위기를 겪고 서쪽 마녀에게 붙잡히지만, 실수로 마녀에게 물을 부어서 그녈 녹여 없애게 됩니다. 그리고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차서 에메랄드 시로 돌아오지요. 

그러나 위대한 마법사 오즈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으로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마법사 오즈는 결국 허수아비에게는 왕겨로 만든 뇌를, 양철 나무꾼에게는 비단으로 만든 심장을 주고, 겁쟁이 사자에게는 용기를 주는 가짜 약을 마시게 하지요.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몹시 기뻐합니다. 마법사 오즈는 커다란 풍선 기구를 만들어서 도로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지만, 그만 실수로 혼자 에메랄드 시를 떠나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허수아비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 오즈 대신 에메랄드 시의 왕이 되고, 양철 나무꾼은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 대신 윙키의 나라를 다스리기로 하구요. 겁쟁이 사자는 동물의 왕이 되어 숲 속을 다스립니다. 마지막까지 소원을 이룰 수 없었던 도로시는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으로 마침내 캔자스로 돌아갑니다. 

여기까지가 원작인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이야기죠. 한때는 저 역시도 이런 이야기를 보며, 나는 착하게 살테야! 뭐 이런 의지를 활활 불태웠지요. 허나 살다보니 세상 이치라는 게 조금은 모순되고 나쁜 애들이 오히려 잘되는 꼴도 봐야 하더이다. 게다가 더욱 억울한 것은 역사란 승자의 편에서 쓰여지기 마련인지라, 진실이 어떠하건 간에 약간의 사실들을 짜집기하여 "승자=착하다"이라는 기묘한 수식을 만들어 놓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꼭 진실인 건 아니에요. 때로 우린 fact의 작은 단면 만을 보고서, 진실을 단정짓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잖아요.  소설 위키드를 집필한 그레고리 머과이어는 사람들의 이와 같은 맹점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동명소설을 무대 위로 옮긴 작품입니다만, 소설 위키드와 뮤지컬 위키드의 내용이 100% 일치하지는 않아요. 소설이 조금 더 어둡고 무겁다고 한다면, 뮤지컬은 좀 더 밝은 편이라고들 말합니다.  

저는 6월 13일 공연을 보고 왔는데요. 으아~그 감동은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가창력과 무대 장치, 스토리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함 그 자체였습니다. 나중에 뉴욕에 가면 정말 또 보고 싶어요. 우정에 대해서, 다양성에 대해서, 진실과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뮤지컬이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자격없는 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을 불러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부터는 뮤지컬 위키드를 보실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라서 미리 알려드립니다. '나는 공연을 보기 전에 그 스토리를 먼저 알고 싶지 않아!'라는 분들은 살포시 창을 닫아 주세요. 하지만 제 경험상 뮤지컬은 적당히 내용을 알고 봐야 오히려 춤이나 노래, 의상, 무대 기타 등등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120%쯤 즐길 수 있더라구요. 자~ 그럼 이제 뮤지컬 위키드의 이야기 속으로 고고~ 고고~ ^^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 주민들이 서쪽마녀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착한 마녀 글린다가 거대한 비눗방울을 타고 손을 흔들며 내려와서 나쁜 마녀가 정말 물에 녹아버렸다는 걸 공표하죠. (첫 장면부터 글린다의 자아도취+주책스럽지만 귀여운 면모가 보이는데, 그녀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Isn't it good to see me?" 이라고 명랑하게 외칩니다. 푸핫! 뭐야...이 여자.!! "여러분을 뵙게 되어 반가워요"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절 보니까 참 기쁘시죠?"라고 묻다니 말입니다! 글린다는 정말 사랑스럽고 재미있지만 대중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모습이 조금은 딱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잠시 엘파바의 탄생에 대한 비밀이 나오는데, 사실 엘파바의 엄마는 어떤 의문의 남성이 주는 초록색의 신비스러운 약을 마시고서, 그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서 초록색 피부의 아기를 낳게 되었던 겁니다. 여하튼 이야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엘파바의 죽음에 대해 듣고 있던 오즈 주민 중에 한명이 글린다에게 묻습니다. 나쁜 마녀와 당신이 친구였다던데 사실이냐고 말이죠. 이에 시간은 또다시 거슬러 올라가 쉬즈 대학에 엘파바와 갈린다가 입학하던 때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땐 글린다(Glinda)가 아니고 갈린다(Galina)였는데 나중에 이름이 왜 바뀌게 되는지는 후에 차차 알게 됩니다-

엘파바와 네사로즈의 아버지는 먼치킨랜드의 영주인데, 그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첫째딸을 미워하고, 둘째 딸인 네사로즈만을 총애합니다. 둘째딸은 출중한 외모를 지녔지만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어 휠체어 신세를 지는 둘째 딸을 돌보게 하기 위해 첫째딸인 엘파바도 쉬즈대학에 함께 입학 시킵니다. 쉬즈 대학에 입학한 엘파바는 기숙사 배정 문제로 네사로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분노하여 자신이 지닌 강한 마법의 힘을 우연히 드러내게 되고, 이로 인해 모리블 학장의 관심을 사게 됩니다. 한편 엘파바와 갈린다는 우연히 한 방을 배정받게 되고, 자신과는 너무 다른 상대에게 마뜩지 않은 심경을 드러 냅니다.

장면은 바뀌어 쉬즈 대학의 유일한 동물 교수이자 염소인 딜라몬드 교수가 등장합니다. 딜라몬드 교수는 '갈린다'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늘상 '글린다'라고 부르곤 하는데요. 그는 역사 수업 중간에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실 예전에 오즈에서는 동물들이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이를 억압하는 反동물의 움직임이 있어 동물들이 조금씩 위축되어 말을 잃어가고 딜라몬드 교수만이 강단에 남은 상황이었죠. 심지어 교실 칠판에는 누군가 "Animals should be seen not heard. - 동물은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지, 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낙서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딜라몬드 교수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Colorful'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뮤지컬 위키드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자 이야기의 핵심이 됩니다. 나와 다른 존재 -가령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종이 다르다거나, 지향이 다른 이들-에 대해서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는 주류사회의 종용과 압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적하는 거죠. )

한편 장면은 전환되어,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바람둥이 왕자 피에로가 쉬즈 대학에 전학을 오는데요. 갈린다는 그를 보고서 첫 눈에 반하고, 그에게 접근하여 무도회에 피에로와 함께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갈린다에게 사소한 문제가 생겼죠. 그녀에게 반한 보크가 옆에 찰싹 달라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으니, 피에로와의 애정전선에 걸림돌이 생긴 셈입니다. 이에 갈린다는 꾀를 냅니다. 휠체어 신세를 지는 딱한 네사로즈를 무도회에 초대하라고 보크를 설득한거죠. 이런 속내도 모르고서 네사로즈는 보크의 초대를 받고 생전 처음으로 무도회에 가보게 되어 행복해 합니다. 

무도회에 참석한 갈린다는 모리블 학장에게서 마법 세미나에 들어와도 좋다는 뜻밖의 허락을 받게 됩니다. 사실 갈린다는 마법 세미나에 줄곧 참석하고 싶어했으나, 그녀에겐 마법적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맞았거든요. 그랬던 모리블 총장이 갑자기 뜻을 바꿔 갈린다를 마법세미나에 넣어 주게 된 것은, 바로 엘파바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엘파바는 자신의 동생인 네사로즈가 생전 처음으로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 일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었죠. 이 일을 알고서 갈린다는 무척 놀랍니다. 갈린다는 엘파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엘파바를 놀려주려고 이상한 뾰족 모자까지 선물해 무도회에 쓰고 오라고 했던 참이었거든요. 갈린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엘파바는 갈린다가 놀려주기 위해 선물한 뾰족한 모자를 쓰고서 무도회에 등장합니다. 다른 학생들은 엘파바의 기괴한 뾰족 모자를 보며 놀려대지만, 엘파바가 꿋꿋하게 혼자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갈린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서 엘파바와 함께 춤을 추며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우정이 싹트게 됩니다. 기숙사에 돌아온 두 사람은 밤새 수다를 떨며, 갈린다는 엘파바를 '인기녀'로 변신시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날 쉬즈 대학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 집니다. 오즈의 경찰들이 딜라몬드 교수를 체포해 가고, 딜라몬드를 대신해서 온 교수는 철장에 갇힌 새끼 사자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동물들은 말을 해서는 안되며, 동물들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알립니다. 이에 엘파바는 분노하고 피에로는 그녀를 도와 겁에 질린 새끼 사자를 훔쳐 함께 숲속으로 달아 나게 됩니다. 숲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지만, 피에로는 황급히 떠나고 엘파바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는 아마도 아름다운 갈린다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체념합니다.

한편 모리블 학장은 엘파바에게 와서 드디어 오즈의 마법사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고 알려 줍니다. 엘파바는 드디어 "반동물" 정책의 문제점을 오즈의 마법사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합니다. 또한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님이라면, 자신의 초록색 피부도 희게 바꿔줄 수 있을지 모른다며 희망을 품게 되죠. 에머랄드 도시로 떠나는 엘파바를 환송하러 나온 갈린다는 피에로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이때 엘파바를 배웅나온 피에로를 본 갈린다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픈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항상 잘못 발음했던 딜라몬드 교수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글린다'로 바꾼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피에로는 글린다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글린다보다 엘파바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여하튼 피에로의 관심을 사지 못해 기분이 상한 글린다에게 엘파바는 함께 에머랄드 도시로 떠나자고 제안하고 둘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떠나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엘파바가 그에게 동물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고 부탁하자, 마법사는 그 대가로 고대의 주술서를 보여주며 자신의 하인인 원숭이 치스터리를 날도록 주문을 걸라고 엘파바에게 요청합니다. 엘파바 자신의 타고난 마법적 능력과 마법서에 적혀있는 주문이 합쳐지자, 치스터리는 괴로움이 몸부림 치다가 날개 돋은 원숭이가 되지요. 괴로워 하는 치스터리의 모습을 본 엘파바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가 날개 달린 원숭이를 만든 이유는 동물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애초부터 그는 동물들을 자유롭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걸 뒤늦게 엘파바는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주술을 되돌릴 수 없었죠. 오즈의 마법사는 아무런 마법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저 "열기구를 타고 어쩌다가 오즈로 날아오게 된 평범한 남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무능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여론을 통제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동물들의 대화'를 금지했던 것이며, 이를 위해 엘파바의 능력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파바는 그에게 반기를 듭니다. 이에 오즈의 마법사는 경비대를 호출하여 엘파바와 글린다를 추격하도록 지시합니다. 그 둘은 성의 탑 꼭대기까지 도망가게 되고, 언론을 통제한 모리블은 엘파바가 사악한 존재이니 절대 그녀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합니다. 엘파바는 마법서에 적힌 주문으로 빗자루를 날게 하고 글린다에게 빗자루를 타고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글린다는 거절하고 엘파바 혼자서 떠나게 되지요. (여기서 엘파바는 그 유명한 노래 'Defying Gravity'를 부르는데요.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배우의 노래실력도 굉장했지만 무엇보다 그 노래에 담긴 뜻과 공연의 줄거리가 합쳐져 감동 백만배!!!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시간이 흘러 엘파바는 '서쪽의 나쁜 마녀"로 불리게 되고, 글린다와 모리블은 기자회견을 열어 엘파바 체포령을 알립니다. 엘파바를 아직까지 잊지 못한 피에로는 경비대장이 되어 그녀를 찾고 있지요. 한편 엘파바는 숨을 곳을 찾아 동생 네사로즈를 찾아오는데, 네사로즈는 자신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은 언니를 비난합니다. 이에 엘파바는 네사로즈에게 주문으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네사로즈의 보석구두에 마법을 걸어 주고, 한평생을 걷지 못하던 네사로즈는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기쁨에 찬 네사로즈는 자신이 사랑하는 보크를 부르는데요. 보크는 네사로즈에게 이젠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을 그만 놓아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은 글린다를 사랑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분노한 네사로즈는 엘파바의 마법책을 보고 엉터리 주문을 외우는데, 잘못된 주문으로 보크의 심장은 쪼그라듭니다. 엘파바는 죽어가는 보크를 위해 다른 주문을 걸게 되는데, 이로 인해 보크는 바로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이 됩니다. 엘파바는 주문을 읽을 줄을 알았으나, 그게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 주문을 외울 때마다 불행한 결과가 나온다는 자책감에 엘파바는 괴로워합니다.

한편 엘파바는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구하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찾아갑니다. 마법사는 엘파바의 힘을 다시 얻기 위해 원숭이들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엘파바는 그의 검은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던 중에 피에로와 우연히 마주칩니다. 피에로는 엘파바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고, 엘파바와 함께 도망칩니다. 이에 글린다는 배신감에 휩싸여 모리블에게 네사로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소문을 내면 엘파바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글린다가 말한 것은 '소문을 내라'는 것이었지만, 악랄한 모리블은 네사로즈에게 실제로 끔찍한 일을 일으킬 작전을 세웁니다. 

모리블은 날씨를 변화시켜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켄자스의 주택을 날아오게 했고, 네사로즈를 덮치게 만듭니다. 엘파바는 직감적으로 네사로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느끼고 서둘러 그곳으로 가지만, 이미 네사로즈는 '도로시'네 집에 깔려 죽은 뒤 였고 게다가 네사로즈의 유품인 보석구두까지 도로시가 "훔쳐" 간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서 모리블의 계략으로 이 곳에 잠복해 있던 경비병들이 엘파바를 붙잡으려 하자, 피에로는 엘파바를 자신이 소유한 성으로 도망치게 하고서 자신은 병사들에게 붙잡힙니다. 엘파바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게 될 피에로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고, 이로 인해 피에로는 고통을 당하지 않는 "허수아비"가 됩니다.

한편 엘파바 덕분에 목숨을 살렸지만, 그녀 때문에 양철 나무꾼이 되었다고 원망하는 보크와 엘파바 덕분에 구출되었음에도 그녀가 납치한 탓에 겁장이가 된 것이라고 믿는 사자, 그리고 오즈의 주민들은 엘파바를 잡기 위해 그녀가 숨어 있는 성으로 몰려 옵니다. 글린다는 친구인 엘파바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와서, 이젠 그만 도로시를 놓아 주라고 엘파바를 설득합니다. 이때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서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오즈를 맡아 잘 다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서 엘파바는 도로시가 부은 물에 천천히 녹아 내려 사라집니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데요. 엘파바가 평소에 소중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유품 "초록액체가 담긴 병"이 오즈의 마법사의 방에서 본 것과 같은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사실은 오즈의 마법사가 바로 엘파바의 친아버지였던 것이죠. 오즈의 마법사의 꿈은 바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는데, 정작 자신의 딸을 몸쓸 짓을 한 셈이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실권을 장악한 글린다는 오즈의 마법사는 기구에 태워 오즈를 떠나도록 명령하는 한편, 악행을 거듭한 모리블은 감옥에 가둡니다.

한편 허수아비 피에로가 등장하여 성의 바닥에 달린 비밀문을 여는데요. 놀랍게도 여기에서 엘파바가 나옵니다. 사실 엘파바는 죽은 것이 아니었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떠나기 위해 엘파바가 물에 녹아 죽은 양 속임수를 펼쳤던 것이었죠. 허수아비와 초록마녀는 행복하게 떠나가고, 글린다는 오즈 주민들과 달콤씁쓸한 축배를 들며 뮤지컬은 막을 내립니다.

한번쯤은 꼭 볼 만한 강추 뮤지컬, 위키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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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에서 받은 초대권으로 본 뮤지컬 힐링하트 시즌2 입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해 초에도 롯데백화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 초대권을 받아서 꽤 재미있게 봤었네요. 힐링하트 시즌2의 티켓에 적혀있던 '자살방지 특별법'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이건 일종의 계몽 뮤지컬인가 했는데 정말 공연장에 가보니까 보건복지부에서 보낸 화환이 서있는거에요. 놀라서 검색해 보니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자살 방지를 위해 후원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었습니다.

주인공 '김대리'는 직장에서는 만년 대리로 일하다가 쫓겨나다시피 퇴사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에게도 이별을 통보받게 됩니다. 김대리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사고까지 치게 되고,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신비의 인물에게서 자살 불가 통보를 받게 되는데요. 천상세계에서 요즘 자살률이 너무 높아 새로운 자살법이 생겼고, 자살할 만한 자격을 심사하여 상위에 랭크된 사람만을 자살 가능하게끔 선정한다는 황당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자살하고 싶다면, 김대리 앞 순위 사람의 자살을 막아 열심히 살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연예인을 꿈꾸는 가수 지망생, 대출빚에 시달리는 직장인 등등 우울한 상황에 처해 자살하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는 2009년을 기준으로 28.4명인데, 이는 33개 OECD 국가 중에 가장 많으며,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입니다. 교통사고와 암(癌)을 제치고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순위입니다. 특히 20대의 경우 사망원인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4.6%가 자살이었고, 30대(34.1%)와 10대(29.5%)에서도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어찌나 가슴이 답답하던지... 이 뮤지컬을 보면서 새마을 운동을 떠올린 것은 저 뿐일까요? 60~70년대의 '잘 살아 보세!' 라든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의 캠페인을 2시간 동안 관람한 느낌이었어요. 그 시대의 방식대로 '자살하지 말자' 라든지, '세상은 제법 살 만 해요' 등의 주입식 문구들을 나열하면,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걸까요? 히융.... 자살을 막기 위한 뮤지컬이라니...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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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산불>을 보고 왔습니다. 뮤지컬은 참 좋아하지만, 연극은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서 어쩌다가 연극 초대권을 받게 되면 가끔 한번씩 가서 보곤 하는정도인데요. 연극 <산불>은 제 돈을 내고 봤던 몇 안되는 연극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제가 초대권으로 봤던 연극들은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연극 산불은 출연하신 분들의 연기 내공이며, 무대 스케일이 남달랐습니다.

특히 강부자씨 연기는 도저히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소백산골의 한 여인네가 정말 내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한 굉장한 사실감이 전해졌습니다. 작년에 본 연극인데도 그분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렬하고 잊혀지지 않던지, 지금도 강부자씨가 아니라 정말 강부자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진정한 연기자는 배역을 맡아 연기를 펼칠 때엔 유리가면을 쓰고 자신 안에 그 캐릭터가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한다고 하잖아요. 일본 만화 유리가면에서 주인공 마야의 연기 묘사를 보면서, 허풍 작렬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강부자씨는 유리가면을 쓰신 것 같았습니다. 사월 역을 분한 장영남씨의 광기 어린 연기 또한 참 훌륭했고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연기력을 지닌 분들이라서 국립극장의 큰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연극 <산불>은 무대 장치도 현실감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제가 봤던 연극은 "나 연극이거든" 이라고 말하듯이, 굉장히 간결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산불의 무대는 디테일이 살아 있더라구요. 무대 위의 갈대밭이라든가,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의 오막집들, 산으로 연결되는 듯한 바위들...이 모든 것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극에 더욱 집중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 공연은 故 차범석 5주기 기념 특별공연이었고,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임영웅씨가 연출했다고 합니다. 차범석 님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분이며, 연극 <산불>은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여러 극단과 단체, 학교 등지에서 꾸준히 올라가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백산맥 한 줄기에 없는 듯이 묻힌 두메산골. 남자들은 하나같이 국군과 빨치산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거나 길을 떠났고, 마을은 노망난 김노인과 아이들을 빼곤 졸지에 모두 여자들만 남은 과부촌이 되었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남한 일대에는 다시 평화와 재생의 물결이 일고 있으나 험준한 산악 지대인 이‘과부마을’에는 밤이면 공비들이 활개를 치는 그늘진 마을로,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신해 공출과 야경에 시달린다. 양씨의 며느리 점례는 이 마을에서는 드물게 유식자이며 아름답고 젊은 과부이고, 최씨의 딸 사월이도 딸 하나를 둔 젊은 과부이다. 어느 눈 내리고 추운 밤, 점례의 부엌으로 부상당한 한 남자(규복)가 숨어들고, 점례는 규복을 마을 뒷산 대밭에 숨겨준다. 규복에게 동정심을 품은 점례는 음식을 날라주며 규복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느 날 점례와 규복의 밀회장면을 사월이 목격하게 된다.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고, 여자들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3개월 후, 사월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헛구역질을 해댈 무렵, 국군의 빨치산 토벌작전이 본격화되어 국군은 점례네 대밭에 불을 지르기로 한다.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두 여인도 모두 불 속으로 뛰어든다. (자료출처: 플레이디비)

대학 다닐 적에 '희곡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서도 배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주의 연극의 특징은 몇가지로 추려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며, 대사나 무대장치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네번째의 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여 연기한다는 것이었어요. 쉽게 예를 들어 햄릿 같은 연극을 떠올려 보시면, 사실주의 이전의 낭만주의 희곡과의 차이가 느껴지실 거에요. 그 어색한 문어체의 대사며, 일반인과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들.... (사실주의 연극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

아무튼 참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기분 좋았어요.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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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경에 이대 삼성홀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왔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야 리뷰를 올리게 되네요.

그리스(Grease)는 남자들이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기름을 뜻하는데요. 올백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고교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좀 노는 남자 고등학생 대니와 순진한 여학생 샌디의 사랑과 오해, 그리고 해피앤딩~ 트랄랄라..뭐 이런 내용입니다.  

뮤지컬 그리스는 꽃미남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어 왔다고 하네요. 이선균, 지현우, 오만석, 엄기준 등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엔 이현씨가 대니역을 맡으셨는데, 오션이라는 그룹의 가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꽤 준수한 외모셨어요.

신나는 음악과 배우들의 열연은 대체로 만족했지만, 스토리 면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많았어요. 고교생들의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다는 면에서 미국 드라마 글리(Glee)와 비교해 보게 됩니다. 미국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스토리가 가볍게 전개된다는 점에선 두 작품이 상당히 비슷한데요. 주제에 도달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깊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글리는 독특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사건과 갈등을 통해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고민을 풀어내는데 반해, 그리스는 좀 마초적이고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적당히 마무리해 버립니다. 순수했던 샌디가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일탈을 택함으로써 대니와 적당히 해피앤딩을 맺는다는 맹숭맹숭한 결말이라니...흐음!

P.S. 저는 포스터 속 포즈 따라하길 좋아합니다....하지만 저 사진을 보니까....다음부턴 절대 저러지 말아야겠네요....저 사진 때문에 내가 나를 디스하는 포스팅이 되어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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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뉴욕으로 놀러 갔을 때에 저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한편 보고 싶었어요. 위키드 아니면 헤어스프레이를 보고 싶었지만, 주머니 가벼운 여행객에게 160불도 넘는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 본다는 것은 무리데쓰! 게다가 당시에 두 작품 모두 굉장한 인기몰이 중이라서 미리 예매를 하지 않으면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기회의 땅 미쿡의 중심 매너튼이잖아요!!! 저와 같은 왕소금 관광객들을 위해 뉴욕 브로드웨이에는 할인티켓 예매소 TKTS가 있습니다. TKTS는 당일에 취소되거나 미판매된 티켓을 20~50% 할인하여 구입할 수 있는 곳인데요. TKTS의 단점이 있다면, 저렴한 티켓을 찾아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기 때문에 굉장히 긴 줄을 서야 한다는 것과 원하는 공연의 티켓이 남아 있는 요행을 바래야 한다는 것이죠.

벌떼같은 인파를 헤치고 눈에 불을 켜고 전광판을 들여다 보았으나, 제가 가장 보고싶어했던 위키드는 단 한장도 남아있지 않더라구요. 위키드 다음으로 보고 싶어했던 2순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역시도 한 좌석도 없음 ㅠ.ㅠ

그러나 티켓 부스에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위키드는 없지만, 헤어스프레이는 마침 딱 한 좌석 나왔다는 거에욧. 옴마나~ 혼자서 뮤지컬을 보러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신나서 얼른 구입했죠. 룰루랄라 티켓을 사들고서 Neil Simon Theatre로 이동했습니다.

헤어스프레이는 60년대를 배경으로 Tracy라는 뚱뚱한 여고생이 TV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으나, 실상은 인종차별이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유쾌한 반란을 담고 있습니다. 트레이시 역할을 맡은 육덕진 몸매의 여주인공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시원한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정말 멋졌습니다. 게다가 구석구석 재미있는 요소들이 꽤 많이 숨겨져 있는데 특히나 트레이시 엄마의 주책스러운 연기와 조연들의 활약 덕택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맛깔나게 요리된 것 같아요.

다만 제 저주받은 리스닝 실력 탓인지,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인지 때때로 옆사람이 왜 저리도 자지러지게 웃나 싶었습니다. 네 영어실력이나 탓하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유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화적 배경이 통해야 하나봐요. 헤헤.  

공연이 끝나고서나서 길가로 나왔는데, 출연했던 배우들이 극장 앞으로 나와 싸인도 해주고 함께 사진도 함께 찍더라구요. 오른쪽에 저 동글동글한 아저씨가 Tracy의 엄마 (아빠 아니고 엄마) 역할을 맡은 분이었습니다. 워낙 감칠맛 나게 재미있는 연기를 펼친터라 제일 큰 환호를 관객들에게서 받았다는...^^;


그나저나 위키드 너무 너무 보고 싶은데, 열심히 짱구를 굴려봐야 겠네요. 초록 마녀, 스릉흔드! 자리주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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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어학연수 시절에 주머니 가벼운 학생 신분으로 파리의 근사한 식당이나 호화로운 쇼핑은 꿈도 못 꾸었으나, 꼭 하고픈 게 한가지 있었습니다. 프랑스 뮤지컬 중에 정말 레전드급인 스타마니아(Starmania)를 보는 것이었죠! 때마침 Casino de Paris라는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저는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티켓 오피스 직원에게 학생 할인 같은 건 없냐고 조심스레 묻자, 가장 앞자리 티켓을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제공! 꺄아아 >_<

스타마니아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뮤지컬로써, 미쉘 베르제(Michel Berger)가 작곡을 하고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이 작사하여 197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극중 배경은 2000년대의 가상의 도시 모노폴리스입니다. (제작 당시로 치면 30여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거죠. ㅋㅋ)
 
스타마니아는 7명의 서로 다른 인물들의 사랑과 고독, 성공과 좌절, 꿈과 권력과 같은 수많은 주제들을 다룹니다. 참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그들의 엇갈리는 사랑들을 볼 수 있지요. 스타를 꿈꾸는 게이 남성 Ziggy와 그를 짝사랑하는 웨이트리스 Marie, 상대를 파멸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이에게 빼앗기기를 거부하는 Sadia, 서로를 향한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Johnny와 Cristal, 그리고 돈과 권력으로 사랑을 사는 Janvier, 한물 간 은막의 스타 Stella.....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매력은 아름다운 음악에 있습니다. 암울한 분위기와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옥같은 명곡들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동영상 클릭클릭! 


<Monopolis>



<Le monde est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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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어느 일요일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로댕전을 찾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만큼이나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꽤 스케일 크고 유명한 작품들도 여러 점 보였죠.

하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저에겐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10년전 파리의 로댕박물관에서 느꼈던 전율이 없었어요. 근육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듯했던 역동성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 듯한 사나이의 표정도 와닿지 않았어요. 똑같은 작품을 다시 본 것인데도, 예전에 느꼈던 그 수많은 감흥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적잖이 당황했어요. 내가 정서적으로 그토록 늙었던가? 작년에 르누와르전을 보기 위해 같은 장소인 서울시립미술관에 왔을 때에 나는 정말 행복해하며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끽했는데!? 도대체 감동이 없는 이유가 뭐지? 내가 최근에 너무 피곤했던가? 아니면 전시장 조명이 적절하지 않았나? 이곳에 사람이 너무 많은가? 회화작품이 내 취향에 더 잘 맞나? 혹시 배가 고파서 이러나 싶어서 베이글과 생과일쥬스까지 먹고 전시장을 둘러보았으나, 변화 없음. 이대로는 답답해 죽을 지경!!! 이건 대체 뭔가 싶었으나 끝내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하여 그곳에서 구입한 작은 souvenir들을 직장동료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전시가 어땠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냥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감동이 없었더라는 제 말을 듣던 직장상사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어요. "큰 조형물은 야외에서 봐야 멋지잖아!"

아!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수수께끼가 단박에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파리의 Musée Rodin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거대한 조형물들은 야외의 푸른 잔디 위에 햇빛을 받으며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의 일부인양 너른 공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일광 아래 세워져있던 "생각하는 사람"이 서울의 좁은 건물 안에 들어와있으니 답답해 보인 것이 당연했죠. 제가 파리에서 본 그 작품과 서울에서 본 이 작품은 분명 같은 작품이었으나, 동시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그 곳을 떠나면 빛을 잃는 수많은 것들.... 아마도 한정된 장소와 시간이 부여하는 희소성으로 인해, 그것들이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이 모두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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