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체리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 마트에 가면 체리가 매혹적인 자태로 유혹합니다. 예전보다 싸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싼 편이라서 맘껏 사먹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사먹습니다. 하루는 미국산 체리를 모두 냠냠 먹고서 체리씨앗을 잘 발라내서 화분에 심었어요. 그리고 며칠이 흐르고서 화분을 봤더니!!! 그동안 못보던 특이한 형태의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새싹이 나오다니...감동입니다. 이제는 집에서 체리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인가~? 이때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고 체리나무 키우기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체리는 암수나무가 있어야 체리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고 실제로 체리를 따먹으려면 최소 7~8년은 키워야 하고~ 기타 등등. 마음 가짐은 이미 과수원 농장주!!!  

 

참고로 이번 봄에 저는 아주 어린 블루베리 묘목을 삼천원씩에 두 그루를 구입해서 발코니 화분에 심었는데요. 완전 꼬맹이 묘목이라 별 기대도 안했는데, 여름동안 블루베리 따먹는 재미가 꽤 솔솔했거든요. 새콤달콤하고 신선한 블루베리를 먹으면서 '과실수'의 매력에 푸욱 빠졌습니다. 보통은 묘목으로 심으면 3년은 키워야 블루베리 열매가 열린다고 하던데 뜻하지 않은 기쁨이 되었어요. 블루베리는 피트모스 토양과 같이 산성토양에서 키워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심을 땐 그것도 모르고 그냥 아무 흙에나 막 심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특한 녀석들이 잘 살아남아 주었고, 맛있는 열매까지 맺었어요. 참고로 방울토마토는 한해살이지만, 블루베리는 여러해살이니까 훨씬 더 보람도 있고 좋아요~ (제 바질&토마토 농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블루베리의 성공 덕택에 저는 또다시 살짝 거만해 졌습니다. 체리 새싹을 보면서 그놈의 '그린썸' 타령을 마음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나란 뇨자...얏빠리 스고이~) 봄이면 체리나무에 체리 블라썸이 아름답게 피겠죠? 아아아~~~ 열매가 열리면 새콤달콤 체리...꺄악.....  

 

체리 새싹으로 추정되던 그 아이의 사진을 아직도 찍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사진 촬영을 위해 오늘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몇일동안 강렬했던 볕에 그만, 이 아이가 폭삭 시들어버렸어요. 라퐁텐 우화에 나오는 그 우유 파는 아줌마가 떠올랐습니다. 우유를 팔아서 계란을 사야지~ 계란이 닭이 되고, 닭으로 돼지를 사고~ 돼지로 젖소를 사고...이런 상상에 빠졌던 그 아줌마는 이런 상상을 하다가 펄쩍 뛰어 오르고 그 바람에 우유단지는 땅에 떨어져 그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된다는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 말이에요. 제가 바로 그 아줌마였어요.

 

아우. 바보! 체리새싹 좀 잘 키우지~~!!! 에잇. 체리 한 팩 더 사먹어 볼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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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뉴스를 보면 늘 답답한 소식들만 들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자연히 관심을 끄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생겼고 이번 총선에서는 그 당을 지지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탈핵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이야기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동물권 보장을 주장합니다. 그 당의 이름은 녹색당입니다. 저는 지는 게 싫어서 스포츠도 무조건 이기는 팀을 응원하는 사람인데, 승패를 떠나 이들의 주장에서 희망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녹색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지만, 정당투표에는 15번 녹색당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녹색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0.48%, 2014년 지방선거에서 0.84%를 득표했다고 해요. 이번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3%를 얻어야 국회에 비례대표를 세울 수 있다는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요? 이 질문의 답은 아래의 우화에서 스스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밀림에 큰불이 나서 동물들이 달아나는 데 벌새 한 마리가 불을 끄려고 물을 머금고 오갔습니다. 코끼리가 물었답니다. 그 정도 물로 불을 끌 수 있겠어? 벌새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벌새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사회를 바꿔나갈 때입니다." (신지예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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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4세기 로마의 군사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자신의 저서 <군사학논고>에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라니 참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에는 전세계와 우리나라에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울컥하게 화가 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운 빠지기도 하는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었는데, 결국 평화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이들이 끝없는 증오와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가톨릭신자인데, 미사가 끝날 즈음에 교우간에 서로 인사를 나누며 "평화를 빕니다 (Peace be with you)"라고 말합니다. 습관처럼 그냥 주고받는 말이라서 그 뜻에 대해 굳이 되새김질하지는 않았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순간에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처음 건넨 인사말이 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11:6-9)"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굳이 즐겨보지 않더라도, 생태계의 질서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위의 성경 속의 표현이 세렝게티의 초원에서 실현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요. 우리가 아는 모습은 바로 이거잖아요.

뜬금없이 세렝게티의 표범에게 초식을 강요하자는 말도 아니고, 야생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걸 몰라서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함께 사는 사회는 세렝게티가 아니고, 우리는 지성과 윤리를 가진 인간이잖아요. 승자독식 (Winner takes all)의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를 병들게 만듭니다. 곰이 풀을 뜯어 먹지 않는 한, 암소와 곰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강자가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 힘을 내세우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있는 이때에 평화와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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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을 키울 때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씨앗을 땅에 직접 파종하여 바로 키우는 방법과 모종 상태로 구입하여 심는 방법으로 나뉘지요. 올해 초, 봄에 방울토마토 모종을 구입하여 발코니에서 대박 성공을 거둔 저는 다소 거만해진 나머지 ‘이 까이꺼 대~애충 씨앗 툭툭 심어도 모종 없이 얼마든 잘 키울 수 있거덩!’ 하면서 이마트표 씨앗으로 바질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캬! 므찌당! 쿨내 진동!!) 

 

하고많은 농작물 가운데 왜 하필 바질이었냐구요? 바질 농사, 그 처음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당시에 케이블TV에서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뚝딱뚝딱 손쉽게 만들며 영국 특유의 억양으로 ‘Lovely’를 외치던 제이미 올리버가 아주 사랑하던 허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바질(Basil)이었습죠. 앞 뜰에서 대충 따온 바질을 그가 스파게티에 쓰윽 집어 넣고서 ‘이거 정말 짱이양!!! 오~ 롭을리!! 후루루룩~챱챱!!’ 그때 그는 진정한 원조 요섹남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기 요리에 심취해 너무 잘 잡수셨는지 나중엔 그냥 땡글땡글한 동네 아쟈씨의 비쥬얼로 역변했으나 여하튼 그 분의 쿡방+먹방을 TV로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저의 아밀라아제도 폭발했어요!! 그리하여 다짐했습니다. 바질을 키워서 무심한 듯 스파게티에 툭툭 꺾어서 넣는 저거! 훗날 나도 꼭 해보고 말 테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어느 날, 방울토마토 농사로 그린썸의 재능을 발견한 - 아니 발견했다고 착각한 - 저는 바질 씨앗을 화분에 거만하게 파종하게 됩니다. 허세남 최현석 쉐프의 소금뿌리는 듯한 자세로 솨아악.…! (읭??-_-???) 여기에서 잠시 그린썸(Green Thumb)에 대해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채소나 식물, 화초 같은 것들을 심어서 가꾸는 재능을 뜻한답니다. (라고 영어 사전에 적혀 있…쿨럭!) 그리하여 심어둔 바질 씨앗은 며칠 지나자 아주 어여쁜 연두색 새싹을 드러내며 그 귀여운 얼굴을 살짝 보여주었어요. 그래요! 역시 난 그린썸을 가진 천재농사꾼이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작고 귀여운 바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로 쭉쭉 자라기는 하지만, 비리비리하게 가늘게 위로만 뻗어가는 모습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더군요.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을 당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던 당시엔 줄기도 꽤 두껍고 잎도 탄탄하고 참 건강한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씨앗으로 심은 첫 번째 작품인 바질은 이다지도 비루한 모습으로 키만 커지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마트에서 파는 씨앗은 Basil(바질)이 아니고 Bisil(비실)이었던 거냣!!??

그런데 허무할 정도로 답이 참 쉽게 나왔습니다. 우리 엄니 왈, 화분에서 싹을 틔우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지요. 농지에 파종을 하면 흙도 많고 공간도 넓고 영양분이 많으니 탄탄하고 크게 자랄 수 있지만 작은 화분에서는 원래 농작물이 비루한 모습으로 깡총하게 큰다는 겁니다. 완효성 비료와 건강한 모종의 도움을 얻어 방울토마토를 성공적으로 키웠던 저는 뿌리내릴 공간이 비록 부족하더라도 영양분만 충분하다면 바질도 손쉽게 키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씨앗이 건강한 나무로 자라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영양분과 물만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씨앗이 싹을 처음 틔울 때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드넓고 대지의 햇빛이 잘 드는 비옥한 농지에서 씨앗이 싹을 틔우면 아기 새싹이 자신의 한계를 속단하지 않고 마음껏 뿌리를 뻗으며 튼튼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겠지만 비좁고 척박한 우리 집 발코니 화분에서는 아기 새싹이 오로지 생존에만 집중하니 허약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자랄 수 밖에요.

그런데 비단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 역시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단지 생존 만을 위해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창대한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바로 어렸을 때 어떤 것을 경험하고 무엇을 듣고 뭘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어렸을 때에 큰 세계를 경험하고 나의 미래의 모습들을 근사하게 그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양한 도전을 서슴지 않는 큰 사람이 되겠지만, 작은 화분 속에 가로막혀 있어서 그저 적은 흙으로 비좁은 공간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아야 하던 사람에게 세상은 참 각박하고 무서운 곳입니다. 그가 설령 뒤늦게 넓은 곳으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의 세계는 그 작은 화분이 전부이고 그의 삶의 목적은 단순히 ‘살아 남기’일 테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화분 속 바질은 아마도 더 크게 되길 기대하기란 힘들 거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슬프긴 하지만 시작점이 다르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쓸데없는 농작의 수고를 그만 기울이고 뽑아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살아있는 것을 뽑기는 미안했고 볼품없이 웃자라는 것만이라도 막아보자는 생각에 바질 가지의 위쪽을 가위로 조금씩 잘라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잎사귀들을 갖고 집안으로 들어 왔지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볼품없고 여린 바질의 잎사귀에서 신기하게도 향긋하고 기분 좋은 바질 향이 진동하는 거에요. 저의 공간을 파릇하게 가득 채울 만큼의 향기였습니다.

시작하는 지점이 달랐기에 크게 될 수 없는 나무라고 제가 속단했던 미생조차도, 그의 본질과 가치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작은 녀석은 단순히 본질만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었고 자신의 생기 돋는 향기로 제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어릴 때 경제적인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역경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 별볼일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남들보다 수십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으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타인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시련을 겪는다 해도 한계를 속단하지만 않는다면, 스스로의 본질을 지키며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어린 바질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면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주택마련과 인간 관계도 포기하고, 그걸로 모자라 희망과 꿈, 급기야는 인생의 모든 n가지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까지 나온 셈입니다. [포기]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 이라고 나옵니다. 이 두 가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절묘하게 서로 통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일을 중도에 그만두어 버리게 되면, 결국 우리의 권리나 자격은 내던져 버려지고야 만다는 뜻 아닐까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남아있지 않은 비좁은 화분 속, 슬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 지금도 작은 바질은 우리 집 발코니의 화분 한 켠에서 치열하게 힘겨운 자신만의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P.S. 글의 제목을 적어놓고서 소리 내어 읽어 보니 약간 므흣-_-;;합니다. 바질, 포기하지 마? 너 지금 바지를 포기하지 말라는 거니...???!!! 아니 아니~~ -_-++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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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마가 시작한다더니, 오전에 잠깐 비가 내리는 정도로 끝나버렸습니다. 요즘 가뭄 때문에 근심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단비가 내려서 하루 빨리 시원하게 해갈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5년이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이 끝나간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이렇게 더욱 더 빨리 가는걸까요?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여름 방학이 너무 천천히 가고 심지어 한나절도 참 긴 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한달이, 아니 한해가 너무 빨리 갑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건지 혼자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별별 잡다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아래에 적어놓은 내용은 철저히 제 상상에 근거한 것이니, 말도 안 된다고 하셔도 어쩔 순 없어요. 태클금지!! ^^

1. 생체시계와 시간의 인지

생체시계와 혹시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 참 재미있는 실험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10대와 20대, 30대, 40대, 50대와 60대 집단을 대상으로 '1분이 되면 손을 드세요'라는 지시를 듣고서 각 집단이 얼마나 정확하게 시간의 경과를 예측하는가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 정말 흥미롭게 50초가 채 되기도 전에 10대 대상자가 손을 들었고, 20대와 30대가 비교적 정확하게 시간을 예측했는데요. 60대 집단은 1분이 훌쩍 넘어서 한참 흘러도 손을 안 드는 겁니다. ^^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정답은 저도 모르지만,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신체의 기능들 가운데 몇몇 부분이 조금씩 닳고 조금씩 퇴화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심장 박동도 예전보다 조금씩 천천히 뛰고 눈도 덜 깜박이고 호르몬도 덜 나오다보니 1분이라는 시간을 제대로 못 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럼 10대는 왜 그렇게 빨리 손을 들었느냐고 물으시겠죠? 10대는 호르몬과 심장박동, 기타 등등의 모든 것들이 과잉의 상태니까 10초가 1분같은, 하루가 한달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

네이버에서 맥박에 대해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가 나오네요~ "맥박수-성인에 있어서는 1분간에 평균 60~80쯤 되지만 성별, 연령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여자는 남자보다 5~6회쯤 많고 나이가 적을수록 맥박수가 많아져서 신생아 130~140, 젖먹이 90~110, 아동기와 소년기 80~90이다."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은연중에 맥박 속도로 시간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더디게 가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요.

2. 경험치의 차이

제 두번째 가설은 '겪어온 사건들과 경험치의 차이' 입니다. 어딘가 초행길을 갈 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그 낯선 길은 참 길게 느껴지실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이 조금씩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턴 그 길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을 거에요. 난생 처음 극장에 갔던 경험, 처음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뭔가를 샀던 기억, 처음 초등학교에 등교하던 경험, 처음 사랑에 빠지던 추억... 이 모든 것들은 참 세밀하게 느끼고 참 느리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번 세번 경험하게 되면, 그것은 경험의 틀 안에서 조금은 수월하게 받아 들이게 됩니다. 일단 패턴을 파악하게 되면 덜 긴장하게 되고 예전의 경험들을 대입해보게 되지요. 경험이 쌓인 일들을 할 때 마음이 편해지니 시간은 자연히 잘 가게 되지요.

3. 살아온 날들의 길이

세번째 가설은 인생 길이의 상대성 때문입니다. 7살짜리에게 1년은 인생의 1/7이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지만, 70세 노인에게 1년은 인생의 고작 1/70밖에 되지 않는 찰나와 같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비유하자면 7살짜리의 1년은 70세 노인의 10년과도 같은 정말 엄청나게 긴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쪽의 두 그림을 잘 살펴보세요. 어느 선이 더 길어 보이시나요?

착시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은 슬쩍 눈치를 채셨겠지만, 정답은 1번과 2번 모두 같은 길이입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엔 1번이 더 길어 보이시죠? 좁은 공간에 있는 1번과 비교적 넓은 공간에 있는 2번이 같은 길이 임에도 불구하고 1번이 더 길게 보이는 것은 사람의 눈이 실제 사물의 물리적 특성과는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물을 따로 분리해서 보는 게 아니고 상호관계를 통해서 본다고 하거든요. 배경에 따라서, 선의 길이, 크기 형태, 방향 등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80세 인생을 살아온 노인에게 1년이라는 것은 위의 그림에서 본 2번선 같은 짧은 시간겠지만, 5살 인생의 꼬마에게 1년이란 1번선 같은 굉장히 긴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결론

참 별 시덥지 않은 주제인데 열심히 적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어요. 누군가가 오래 전에 이미 이런 것들을 훨씬 더 멋지고 분석적인 언어로 기술했거나 체계적인 이론을 잡아 놓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그동안 제가 시간에 관해 생각했던 잡설들을 끄적거리면서 나름 재미있었어요. 

각각의 가설에 나온 내용들을 잘 활용하면 인생이라는 시간을 후딱 지나가는 걸 조금이나마 막아 볼 수 있진 않을까요? 1번 가설에 기반한다면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뛸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만들어서 운동을 한다든가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2번 가설에 기초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험들을 한다든가 새로운 내용들을 배운다든가 하는 걸로 긴장과 자극들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줘서 자신의 시간이 조금 느리게 가게끔 할 수도 있겠지요. 3번 가설이 맞다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전체 길이를 보지 말고 한순간 한순간에 집중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1년은 꽤 긴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단히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저의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빠르게 흐르게 될거에요. 절대적인 시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는데 상대적인 시간은 나날이 더! 더! 더!!! 빨리 간다는 게 살짜쿵 우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시간을 더 아껴 써야 겠다는 계몽적인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엔 어떤 가설이 제일 설득력 있게 느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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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수많은 일선 학교에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의 원인과 해결방안들이 논의될 때면, 장년층 분들께서 꼭 말씀하시는 내용 중 하나가 '우리 어릴 때엔 그런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반응입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이지메 현상을 겪어 왔지만 우리에게는 1990년대만 해도 이런 것들이 다소 생소한 개념이기도 했고, 실제로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왕따나 집단 따돌림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용어가 없었다고 해서 당시에 집단 따돌림의 문제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요? 이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참 신기하다고 느꼈던 점 중에 하나는 도심이나 동네 거리, 어디에서나 장애인들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울 도심에서는 장애인을 만나는 일이 굉장히 드문 일인데, 파리에서는 장애인들과 가끔씩 마주칠 수 있었고 심지어 저와 기숙사에서 한 방을 나눠 쓰던 룸메이트의 남자친구 역시 경미한 장애를 갖고 있었지요. 왜 파리에서 저는 많은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국가별로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애인의 비율이 아니라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의 높이 차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생뚱맞게 갑자기 장애인 이야기를 왜 꺼내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나 소수자들에게 참 가혹한 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장애의 유무에 기인하는 장벽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불합리한 종류의 장벽들과 집단 따돌림이 조금은 다른 형태로 우리 문화 안에 참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었고 더욱 공고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 이데올로기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다문화 가정의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은 아직도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으며,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장벽에 막혀 장애인들은 현관 밖으로도 나오지 못해 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집단 따돌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해왔던 것이지요. 

게다가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체계는 옳음과 그름에 대해 단 하나의 잣대만으로 평가하여 획일화된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학교 교육체계 속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 왔을까요? 단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며 그 답에 자신을 비집어 넣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아이들은 한편으론 그런 세상을 원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조금 다른 소수의 아이들에게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집단 따돌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와 조금만 달라도 마치 그것은 ‘틀린 것’ 인양, ‘잘못된 것’인양 매도하고 배척하는 문화가 우리들 안에 참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집단 따돌림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들 하지요. 다수의 아이들이 조금 다른 소수의 아이들을 따돌리는 모습은 소수자를 배척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애인, 다문화 가정, 성적소수자, 독거노인에 이르기까지 힘없고 수적으로 열세에 속하는 이들에게 향하는 이유 없이 따가운 시선은 – 참 부끄럽긴 하지만 – 제가 어릴 때에도 있었고 제가 성인이 되어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청소년 집단 따돌림 문제들을 어떻게 단순히 청소년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그 문제만을 분리하여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그 해결을 위해 두 가지 측면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청소년부터 중 장년층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성하고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획일화된 교육체계, 소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존재의 욕구쯤은 희생하라는 식의 배금주의, 잘못된 방향의 강압적 집단주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내면부터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이나 경제시스템만 모방했을 뿐, 철학이나 이념, 사상과 같은 내적 성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한국이 기적적인 경제적 성장은 이룩했을지언정 우리 안의 마음은 심하게 병들어 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과정, 각종 미디어의 컨텐츠 개발단계, 정부 정책 전반까지도 인간의 존재의 가치에 대한 성찰과 다양성 존중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두 번째로 건전한 또래문화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들이 시급합니다. 집단 따돌림을 하지 말라는 캠페인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집단 따돌림] 이라는 문제상황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또래들이 건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단체활동들을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이는 것을 장려하고 예산을 지원하여 심적으로 소외 받는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 주며, 다른 한편으로 모든 일선 학교에 심리상담을 전공한 상담교사들을 배치해 실질적인 상담기회를 학생들에게 준다면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면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단 따돌림을 막고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아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첫걸음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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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가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녀의 소름끼치는 가창력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 배시시 웃었더랬습니다. 제 추억 속의 머라이어 캐리는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살짝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돌고래 가창력의 대명사였으니까요. 회사 동호회에서 다 같이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설레는 마음으로 저 역시 냉큼 신청을 했지요. 일본 공연에서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혹평을 받았다는 신문기사를 읽긴 했지만, 설마 설마 했습니다. 공연 당일에 올림픽공원에서 제 눈으로 직접 그녀의 무대를 보면서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지요. 서너 곡쯤이 흐르고 나니, 심지어 좌석을 떠나는 관객들까지 나타났고요. 어떤 이는 아예 무대를 등지고서 그날의 개기일식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Emotion의 반주가 흐르자 초반에 환호하던 관객들조차 그녀의 형편없는 노래가 흐르자, 싸늘한 침묵과 함께 실망의 탄식까지 나왔습니다. 이 지점에 이르자 한 때의 디바였던 머라이어 캐리에게 짠한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귀여운 아이들을 녹화한 동영상이 무대 스크린을 통해 보여질 때에 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뮤즈였던 여신이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건가... 엄마가 되고 나이가 들면, 성대도 일종의 근육이니 예전같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인데 내가 혹여 그녀에게 너무 과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닌가.... 그 비싼 가격이 무색한 형편없는 노래로 들으면서, 너무 과한 것을 기대한 자신을 반성했었습니다.  

공연 시작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등장한 그녀는 참 실망스러운 공연을 내내 보여주고서 마지막 곡으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렀습니다. 그리고선 Thank you 를 딱 세번 외치고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게 공연이 끝났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정말 이게 끝이냐고 서로 물었습니다. 관객의 박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작별 인사는 없었고 커튼콜 역시 당연히(?) 없었으며 그렇게 허무하게 추억 속 디바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는 그녀의 노래보다 그 태도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만.약.에. 그녀가 아티스트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성의를 한국 팬들에게 보였다면 저는 이런 글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나이가 들었으니까 목소리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그 무대를 준비한 코러스와 악기 연주자, 댄서와 모든 스탭의 노력 덕택에 빛나는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귀가 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라이어 캐리를 뺀 공연의 나머지 부분들은 실제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돌고래 창법의 환상적인 추억 속 디바는 이미 사라지고, 형편없는 가창력으로 뻔뻔하게 노래를 부르며 관객에 대한 예의도 모른 채 공연 수익만 노리는 야시시한 드레스 차림의 탐욕스러운 여성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바로 오늘, 제가 사는 동네의 작은 아트홀에서 '로스 로메로스' 공연을 봤어요. 다소 따분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서 예매한 클래식 기타 공연이었는데, 정말 기분 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제지간인 할아버지 두 명과 그 할아버지의 아들과 조카, 이렇게 네 명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2시간을 꽉 채웠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갔던 연주회였는데, 그 두 시간동안 말도 안되게 행복했습니다. 풍부한 감성과 뛰어난 기교의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곡이 끝날 때마다 할아버지 연주자들의 행복한 미소에서 그들의 온화한 에너지가 모두에게 따뜻하게 전해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서도 끝없이 환호하는 관객들을 위해 이 분들은 무대를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오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아름다운 앙콜곡들로 화답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연주한다고는 해도, 오로지 기타 소리 만으로 이렇게 꽉 채워진 음악이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 명이 독주를 펼칠 때엔 혼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했으며, 네 명이 함께 연주할 때에는 마치 한 명이 연주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화려한 테크닉과 유려한 스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감성이 녹아있는 연주였어요. 기타 현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품고 있는 줄 몰랐는데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현악기가 갖는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때로는 달콤하게 현을 가볍게 훑고, 때로는 거문고처럼 애절하게 퉁기고, 또한 때로는 카혼처럼 경쾌하게 기타의 몸통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3대째 기타를 연주하는 가문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무대였습니다. 이 멋진 가족을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또다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요?  겉만 번지르르한 장사꾼 M양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소박한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치유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싼 건 나쁜 법이 있어도, 싼 건 좋은 법이 없다던가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머라이어 캐리 내한공연 티켓가격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이렇게 빼어난 공연을 만끽했으니까요. 음악가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다고요? 그 말도 틀렸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는 머라이어 캐리의 녹슨 성대를 간단히 비웃었어요. 뭐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그런 비교 자체가 로스 로메로스와 같은 훌륭한 아티스트 패밀리에게는 모욕이니까요.  (어딜, 감히!!! 결론은 기.승.전.... 로스 로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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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쯤 우연히 신대방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유럽여행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맥주를 만났더랬습니다. 그 맥주는 이름하야 슈무커 헤페바이젠(Schmucker Hefeweizen)!!! 예전에 독일 뮌헨에 놀러 갔을 때 마신 맥주와 너무나 흡사한 풍미를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남들은 독일 뮌헨에 놀러 가면 호프브로이하우스에 간다고들 하던데 저는 그런 교과서적인 여행이 괜스레 싫었어요. 여행 가이드북을 숙독한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독일 아저씨들이 바글바글한 역앞 선술집에 즉흥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이드 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정말 허름한 맥주집이었는데, 현지인들이 어찌나 가득하던지요. 우연히 독일행 열차에서 만나 알게된 한국인 학생과 의기투합하여 당당하게 입장! 저희는 그곳의 유일한 여성 손님들이었고 또한 유일한 동양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맥주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맥주와 다르게 약간 희뿌연 느낌인데 더욱 향긋하고 덜 톡쏘는 부드러운 느낌이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탄산이 너무 강한 느낌의 음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맥주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다지 즐겨 마시지 않았더랬는데 독일의 그 선술집에서 만난 맥주는 제가 싫어하던 강한 탄산은 덜 갖고 있고, 선호하는 모든 특성들은 아주 환상적으로 조화시켜 놓았더라구요!! 동양인 여대생들에게 무한애정을 쏟는 독일 아쟈씨들의 관심 따위는 뒤로 한 채, 정말 끝내주게 맛있는 맥주 덕택에 당시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답니다.

서울 살때는 슈무커 헤파바이젠 때문에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자주 가곤 했는데 이제는 먼 곳으로 이사와서 가끔 그 맥주맛이 그립습니다. 병으로 구입하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병맥주로 구입할 수 있는 도매점 또는 소매점이 있다면 전용잔과 함께 꼭 사고 싶은데...ㅠ.ㅠ (사실은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을 때에 사장님께도 잔이랑 병맥주를 구입하고 싶다고 여쭈어봤는데, 그 가게에서는 생맥주만 취급하는데다 맥주잔은 판매용도 아니기에 팔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시더라구요. 힝~ 아무리 멀더라도 계속 찾아 오라 이거죠!!!?) 우리가 그동안 흔히 마셨던 맥주는 원료가 보리인데 반해, 슈무커 헤파바이젠의 주원료는 '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필터링을 하지 않아서 효모가 더 살아 있대요. 그래서 맛이 좀 더 부드럽고 달짝지근~ 향긋향긋. 뭐 이런가봐요.

이 맥주는 단연코 '가장' 맛있는 맥주 라는 평이 아깝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기회되시면 꼭 한번 마셔보세요. 소세지를 곁들인 슈크루트를 안주삼아 함께 드셔도 좋고, 화덕에 구운 마르게리따 피자와 함께 드셔도 환상 조합입니다! 아....문득 떠오르는 추억! 몇년 전엔 그런 적도 있었네요. 하루는 퇴근길에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러 슈무커 헤페바이젠을 시켜놓고 2층 발코니 자리에서 창밖을 보는데 하늘 귀퉁이에 무지개가 살짝 떠있는거에요. 아주 아주 차가운 잔에 담긴 끝내주는 맥주 한 잔, 그리고 하늘엔 무지개...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아주 달달하게 몽환적이고도 행복한 순간이 되었더랬죠. 맥주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뿌옇게 먼지낀 책을 들춰보는 것처럼 잊혀져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네요. 헤헷. 주말엔 슈무커 헤페바이젠을 찾아서 동네 맥주가게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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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작은 텃밭을 꾸며보기로 결심! 훗날 내 집 뒷마당에 텃밭 꾸미기 프로젝트의 준비단계인 셈이지요. 아직은 초보 농부지만, 이런 경험들을 차곡 차곡 쌓아서 나중엔 뒤뜰에서 유기농으로 포도도 키우고 콩이며 상추도 내 밭에서 따서 먹으려구요~^^ 주말농장의 텃밭을 분양 받는다면 더욱 다양한 작물을 키울 수 있고 농작물도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겠으나, 저같은 직장인이 주말농장까지 오간다는 건 쉽지 않은 터라 우선 발코니에서 간단하게 키울 수 있는 채소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봄철이라 시작할 수 있는 작물들이 꽤 여러가지 있더라구요. 여름엔 채소 키우기가 쉽다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너무 강한 햇빛이나 장마 때문에 작물을 키우기 힘든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봄이나 가을이 초보 농부들이 미니 텃밭을 시작하기에 좋아요.  

모든 식물들은 일정량 이상의 채광이 꼭 필요한데,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들은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들보다 훨씬 더 많은 햇빛이 필요하다고 해요. 제가 사는 곳에는 다행히 발코니가 있기 때문에 발코니에 화분을 두어 키우기로 했습니다. 그럼 뭘 키우는 게 좋을지 결정해야겠죠? 작은 화분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해야 하잖아요. 텃밭에서 여러가지 채소들을 키워본 언니의 강추 작물은 바로 방물토마토와 부추였습니다. 의외로 상추는 키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해주더라구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베란다에서 키우기 쉽다고 알려진 작물은 쑥갓, 부추, 쪽파, 방울토마토가 꼽히더군요. 참외나 수박, 호박 같은 작물은 집에서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런 아이들은 햇빛이 많이 필요하고 영양분도 많이 필요한가보더라구요. 제가 선택한 아이들은 좀 쉽다고 알려진 방울토마토와 부추, 그리고 조금 어렵다고 알려진 고추와 상추였습니다. 정말 이 농사가 성공하면 삼겹살 파뤼를 제대로 해보는 겁니다!!! 우헤헤헤헹헹히히히호호...상상만으로 즐겁다옹~ 

제일 먼저 화분을 골랐는데요. 작은 크기의 화분을 여러개 두어서 키울 수도 있겠으나 저는 위와 같이 조금 긴 형태의 플라스틱 화분을 골랐습니다. 작물의 뿌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화분의 윗면과 아랫면의 넓이가 비슷한 것이 좋다고 하니 다른 분들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작물을 키우느냐에 따라서 화분의 폭과 깊이를 정할 필요가 있으니 자신이 키울 작물에 따라서 화분을 고르시기 바래요. 쑥갓이나 상추, 래디시 같은 작물들은 깊이가 10~15cm만 되어도 충분하지만 토마토 같은 열매채소나 생강같은 뿌리채소를 키우실 분은 20cm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점 참고하세요.

준비한 화분에 저는 우선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루바망을 살짝 얹고서 마사토를 소량 얹어 주었습니다. 마사토는 중립과 소립 두가지를 구입했어요. 굵은 중립을 가장 아래에 깔고서 그 다음으로 소립을 살살~~ 그 다음으로 구입한 상토를 부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재료들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엔 이까짓 흙은 그냥 길에서 퍼다가 키우면 안되나 싶더라구요. 헤헤..;;; 그런데 저희 언니 왈,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더군요.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토는 채소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 pH나 배수성 등을 감안하여 나온 흙이기 때문에 작물 생장이 좋다고 하네요. (상토도 종류가 다양하니까 목적에 맞는 상토로 구입하세요~ ^^) 또다른 두번째 이유는 자칫 노지의 흙을 퍼다가 키우게 되면 해충 알이나 벌레들이 흙과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군요. 자연 상태에서는 해충이 있더라도 식물의 자연의 면역능력으로 튼튼하게 자라니까 별 문제가 없지만, 한정된 공간인 화분에서는 해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저는 씨앗을 구입할지 모종상태로 구입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직 "아기농부"니까 씨앗은 너무 어렵겠다 싶어서 모종상태로 구입했습니당.  모종을 심을 때엔 뿌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뿌리 부분이 살짝 덮일 정도가 좋습니다. 모종과 모종 간의 간격은 너무 촘촘해지지 않게끔 심어주세요. 너무 촘촘하게 심어두시게 되면 작물의 생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병충해의 위험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요로코롬 잘 심고서 발코니에 걸어두었습니다! 물을 주는 주기는 작물의 상태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데 겉흙이 말랐다 싶을 때에 흠뻑 주시면 되요. 그런데 흠뻑의 의미가 조금 어렵습니다. 너무 조금 주시면 작물이 말라 죽고, 그렇다고 해서 과하게 주시면 흙에 있는 영양분도 물과 함께 졸졸 흘러가 버리니까 아깝죠! 화분 밑으로 물이 한두방울 떨어질 정도면 됩니다. 참고로 저희 집에 화분은 이틀에 한번씩 주니까 적당한 것 같았어요. 참고로 이렇게 심은 날부터 이제 정확히 한달하고도 열흘이 지났습니다. 토마토와 고추는 쑥쑥 자라서 이젠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그 포스트는 다음 기회에!!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고 쉽습니다.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농작물을 제 눈으로 보고 키워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네요. 저같은 어설픈 농부의 손에게서도 잘 자라는 걸 보면 여러분은 더 잘하실 수 있어요! 지금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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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경에 한 명문대 학생이 자퇴를 결정하고서 자신의 생각을 대자보를 통해 밝혔고 이 내용은 주요일간지에 기사화되었습니다. 그 대자보 내용이 당시 직장생활 10년차쯤 되었던 제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와 닿았는데, 아직도 가끔씩 그 글을 떠올리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원문보러가기) 그 글에서 그녀는 자신을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하는 경주마에 비유했습니다. <누군가를 따돌렸고 내가 꽤 우수한 성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생각할 때쯤 또다시 경쟁 질주는 시작된다>는 메타포는 바로 우리의- 아니 바로 제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전락한 대학교육, 그리고 초원에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피 튀기는 무한경쟁의 트랙에 서있는 우리들. 

 

그녀의 글을 철부지 대학생의 투정쯤으로 치부하기엔 메시지가 담고 있는 바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직장생활을 10년쯤 해보니까 그딴 투정은 배부른 헛소리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었겠으나, 실상은 정 반대였습니다. 직장생활을 10년쯤 해보니까 정말 이 세계는 끝없는 트랙이자 거대한 기계였고, 저는 경주마인 동시에 사소한 부품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잠깐 추월하고서 푸르른 초원에 도달할 거라는 행복감에 도취되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습니다. 또 다른 경쟁이, 또 다른 살육이, 또 다른 전투가 다시금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언제쯤 초원을 달릴 수 있을까 꿈꾸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그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어찌 어찌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잘 살아 남았는데 이 경주는 끝나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달리던 수많은 이들이 조금씩 줄어들 때에 약간의 우월감을 느낀 것도 사실인데, 역설적으로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그렇게 일에 대한 불평도 늘어나고 짜증도 늘어나던 요즘, 문득 제 스스로의 커리어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연 "경주"하는 내내 불행했을까요? 오히려 정 반대였습니다. 때로 눈물 쏙 빠지게 힘들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참 행복했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왜냐면 제 인생의 목표가 "타인보다 빠르게 달리기" 나 "레이스에서 우승하기"가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커리어우먼으로서 대단한 성공을 쟁취하진 못했어도 일할 곳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 땀이 담긴 선물도 할 수 있었고, 제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었고, 일터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들을 이겨냈다는 성취감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법도 익혔지요.  

 

요즘도 저는 여전히 투덜거립니다. 지금 하는 일이 끔찍하게 싫을 때도 있고 회사에서 생긴 고민들을 머릿속에 그대로 담고서 집까지 돌아와 밤새 잠까지 설칠 때도 있습니다. 우울함의 늪에서 한참 헤매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 세계를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미' 저는 초원을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론 자신이 하찮고 비굴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회피하지 않는 이유는 제게 더욱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눈에 저는 지루하고 끝없는 트랙을 달리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제 이상과 가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제 마음은 이미 초원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동의 신성함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비굴함 덕택에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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