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와인에 대한 첫 추억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 제 룸메이트 엘렌이 기숙사 연말파티에 초대해 준 것이지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와인을 맛보게 되었는데요.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의 파티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빈티지의 훌륭한 보르도 와인이 딱 한병 있었던 것이죠^^ 다들 소중하게 따라서 마시는데, 옆에 있던 동유럽 출신의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제게 악마의 속삭임을 건넵니다. "와인에 콜라를 섞어 먹으면 무지 맛있당~ *^^*"  순진하던 저는 바로 따라해 봅니다. 효오~ 정말 맛있었어요!!! 과일향과 콜라의 탄산이 은근히 어우려졌거든요. 그런데 잠시 후 제 룸메이트 엘렌이 제 만행을 보고서 기겁을 합니다. "으악! 이건 정말 정말 정말 좋은 보르도 와인이라구!!! ㅠ.ㅠ" 지금 생각해 봐도 제 행동에 잘못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뭐든 스스로 즐기면 그만 아니겠어요? ^^

그 이후로 정말 다양한 와인들을 접하게 되었고 오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와인, 혀끝에 녹아드는 달콤한 와인, 기분 나쁜 와인, 쓰레기 와인(!) 등 많은 것들을 만났지요. 하지만 오늘은 아직 한번도 못 만나본 "유기농 와인"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만약 와인을 마시면서 환경보호의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면 가슴 뿌듯할 테지요? 유기농 와인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발효시에도 자연효모를 이용하는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와인을 말합니다.

 
아직 국내에서 유기농 와인은 소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해요. 먹을거리부터 생활용품, 의류 등으로 친환경 소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나 유기농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와 인식 수준은 높지 않은 편입니다.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비싼 데다 맛도 투박한 편이어서 많이 선호되지는 않습니다.

  

유기농 와인의 기준이 뭐죠?

세계적으로 공인된 ‘유기농 와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독일 와인업계는 ’독일와인=중저가 화이트와인‘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유기농와인으로 관심을 돌렸지요. 1985년에 이미 ‘에코빈’협회를 만들어 유기농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해마다 ‘유기농와인(Organic Wine)' 축제를 열기도 한답니다. 독일은 92년산 포도주부터 유기농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EU국가보다 유기농산물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했습니다. 살충제와 비료를 전혀 쓰지 않으며, 클로버 등 뿌리가 깊은 풀이나 허브 등을 포도밭에 길러서 자연적으로 지력을 높이고 꽃들을 포도밭에 자라게 해 곤충에 의한 수분을 장려하는 생태주의적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한다고 하네요. 물론 병에 담을 때도 방부제를 쓰지 않구요.

 

유럽에선 지난 1992년부터 화학 비료나 살충제, 제초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유기농 와인’으로 규정합니다. 유기농 와인은 썩은 포도껍질이나 두엄, 퇴비 등 자연 거름으로 토양을 일구고, 화학 비료나 제초제, 살충제 등 화학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와인 제조과정에서 자연 효모를 사용하며 온도를 조절하지 않고 발효시킵니다.

 

미국의 경우는 주마다 유기농와인에 대한 규정이 다른데요. 캘리포니아에서는 화학비료 등을 사용해 재배했어도 병입시 방부제를 넣지 않은 정도에 ‘오르가닉 와인’이라는 레이블을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와인 병입 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한 이산화황(SO) 등의 보존제를 첨가하지 않는 것이지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Biodynamic wine)은 한 발 더 나아가 유기농 비료를 허용하지 않고, 극소량의 퇴비만을 사용합니다. 해충을 잡을 땐 무당벌레 등 천적을 이용하구요.

 

유기농 제품을 생산ㆍ유통할 경우 이를 관장하는 유기농업개발청(AB)의 허가를 받아야 하구요. 또 포도재배업자는 매년 1회 정기 검사와 불시 검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통과된 유기농 와인은 라벨에 AB로고와 에코서트(Ecocert) 등과 같은 정부 인증마크를 붙일 수 있지요최근에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칠레산 유기농와인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유기농와인은 30~40여가지이며 이 중 프랑스산이 가장 많고 이탈리아, 칠레 와인 등의 순서입니다. 구입을 원하면 각국 유기농 와이너리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국내 수입사를 통해 주문하면 됩니당! 최근에는 유기농 와인을 넘어서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참고자료: 《비티컬처 Viticulture》 스티븐 스켈튼
한권으로 끝내는 와인 특강 전상헌

헤럴드경제 200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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