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수다에는 참 다양한 주제들이 오가곤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증권가 찌라시에 나온 모 연예인에 관한 소문, 요즘 패션 트랜드, 어제 본 드라마까지 말이죠. 그 중 단골 소재는 '나쁜 남자'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 첫날에 남편이 부인을 때렸다더라, 친구의 애인이 천인공노할 나쁜 짓을 했는데도, 친구는 그 애인을 용서했다더라...등등...

참 딱한 사연도 있고, 너무 엽기적이라 개그나 드라마 소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어서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듣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왜 헤어지지 않는걸까? 그녀들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기에 그런 형편없는 남자에게 빠져서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걸까? 정작 착하고 한결같은 남자의 가치는 왜 과소평가 받는걸까? 소위 "나쁜 남자 (또는 나쁜 여자) 신드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곰곰히 이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대학시절에 들었던 강의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아동 심리학 수업이였는데, '강화'에 대한 부분이었지요. 사람의 행동이 반복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어떤 행동을 했을 때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착한 행동을 했을 때에 칭찬을 해줌으로써,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도록 강화시키는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스키너는 이를 동물 실험에 접목하여, 생쥐의 먹이 상자 옆에 지렛대를 만들어서 그걸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장치를 설치했는데요.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에 먹이라는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이 강화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지요. 이게 그 유명한 스키너상자입니다.

그런데 이 실험의 조건들을 약간씩 변형해서 적용해보던 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강화 효과는 규칙적으로 보상이 일어날 때보다 간헐적으로 보상이 이루어질 때에 더욱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가령 쥐가 지렛대를 한번 누르면 먹이가 한알씩 규칙적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강화시키는 것 보다는, 어떨 때엔 세번 누르면 먹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엔 한번 만에 먹이가 나오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열번을 누르니까 먹이가 나오기도 하는 방식으로 강화를 시키면 그 습관이 잘 없어지지 않더라는 말이죠. 이를 간헐 강화 (intermittent reinforcement)라고 부르는데, 의외성이나 불규칙성 때문에 대상에 대해 싫증이 덜 나게 되고 중독성이 없어지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간헐 강화에서의 핵심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보상이 주어질수록 강화 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지렛대를 누르다 보면 언젠가는 보상이 나올 것 같다는 환상에 빠져 계속 지렛대를 누르고 있는 생쥐의 모습....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맞습니다. 카지노에서 대박을 기대하며 슬롯머신을 돌리는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먹이상자에서 먹이가 나오길 기대하며 끊임없이 지렛대를 누르는 생쥐의 까만 눈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또한 대어의 환상에 취해 밤새 낚시질을 하는 낚시광들의 모습도, 정기적인 급여보다 PS(Profit Sharing) 나 PI(Productivity Incentive)에 열광하는 직장인의 모습도 사실은 간헐강화의 결과물입니다.

그럼 이제 나쁜 남자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나쁜 남자의 핵심 포인트는 "나쁜 행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번씩 잘해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매일 잘해주던 남편이 어쩌다 한번 짜증을 내면 배우자는 굉장히 분노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짜증을 내던 남편이 어쩌다가 한번 귤 한 봉지를 사들고 오면 부인은 감동합니다. 나쁜 남자가 그걸 계산하고 한 행동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든 간에 상대방은 이미 그 나쁜 남자의 간헐적인 보상 방식에 '중독'됩니다. 착한 남자가 '매일 매일 먹이 한알' 방식의 일률적인 보상을 하는 동안에 소위 밀땅 잘하는 나쁜 남자는 '먹이 주는 건 내맘대로'라고 하면서 상대를 휘어잡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애인, 또는 나쁜 남편, 나쁜 아내가 진정한 승자이고 심리학의 귀재이며 모든 사람들의 열망의 대상이 되나요? 아니죠. 이상하게 나쁜 남자에게 쉽게 당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당하고, 다음 사람에게 또 당하고, 다음 번에 또다른 남자에게 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자꾸 당하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적당히 당하면 만나지 말아야 할텐데 포기하지도 않고 계속 나쁜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그녀들이 나쁜 남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심리적인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저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로 자신이 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입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더욱 광적으로 종교활동에 심취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게, 그녀들은 자신이 '어리석게 나쁜 남자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그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더욱 더 나쁜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두번째로 그녀들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초기에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당한 선을 벗어날 정도로 상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이를 제지하여 관계의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초기에 그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더라는 거죠. 상대방이 용인되는 행동 이상의 잘못을 하면 단호히 대처해서 그 행동을 고치든가, 정 고쳐지지 않으면 이별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인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A라는 사람에게는 천사표였던 사람도, B라는 사람에게는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좋은 인품을 이끌어 내는 것도 일종의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대개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이 나쁜 남자에게 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어릴 때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경우엔 "내가 못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건데, 어쩔 수 없지" 라고 자포자기 합니다. 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과소평가를 당하게 되면 "내 가치를 모르다니, 넌 참 멍청해. 난 훨씬 더 가치있는 사람이니,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어"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이별을 택하지요.

그러니 이제 나쁜 남자는 만나지 마세요. 남들에게는 참 다정한데, 당신에게만 나쁘게 굴던가요? 그럼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어쩜 당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라요. 또는 당신이 그 사람의 좋은 인격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당신과 그는 화학적으로 안 맞는 것일지도 모르죠. 여하튼 어떤 쪽이 되었건 자신을 형편없게 대하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마세요. 흔한 광고 카피처럼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이젠 스키너의 상자에서 탈출해서, 간헐 강화의 지독한 중독에서 벗어나세요. 가끔 당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고 항~상 잘해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당신에겐 충분히 있습니다.